탄도탄 요격 능력 갖춘 첫 구축함
SM-3로 수백km 고도서 격추
미사일·잠수함 탐지 능력도 향상
기동함대 창설 계기 훈련 첫 공개
지난달 31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출항해 제주 해군기지로 향하던 우리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DDG-995)이 일순간 긴장감에 휩싸였다.
1일 제주 앞바다에서 정조대왕함이 제주 해군기지를 향해 힘차게 항진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적 잠수함이 기지를 이탈해 미식별 상태라는 훈련 상황이 부여되면서다. 함 내에 “대공·대잠경계 강화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상부로부터 적 잠수함이 함경북도 동방 해상에서 활동 중이라는 정보를 접수하자 정조대왕함은 해당 해역을 스파이(SPY-1D) 레이더로 집중 탐색하기 시작했다. 스파이 레이더는 ‘신의 방패’라고 불리는 이지스 전투체계의 핵심으로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를 포착할 수 있다.
잠시 후 정조대왕함 전투지휘실(CCC) 내 요원이 적 미사일을 탐지했다는 뜻의 “파이어볼!”을 외쳤다. 이와 함께 전투지휘실 정면 대형 화면엔 SLBM의 현 위치와 포물선 모양의 이동 경로가 표시됐다. 정조대왕함은 포착한 데이터를 공군 KAMD 작전센터에 전송했다.
정조대왕함 승조원들이 전투지휘실(CCC)에서 탄도미사일 방어작전 및 대잠수함작전 절차 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수백km 고도서… 적 SLBM 산산조각
정조대왕함에는 SM-3 해상탄도탄요격유도탄과 SM-6 장거리 함대공유도탄이 탑재될 예정이다. SM-6는 적 탄도미사일을 종말단계에서, SM-3는 그보다 높은 중간단계에서 요격할 수 있다.
“표적도착 5초 전, 4, 3, 2, 1, 도착! 마크인디아(표적 명중)!”
요격미사일과 SLBM 좌표가 점차 가까워지다 동해 상공의 한 점에서 만났다. 그 순간 화면에서 미사일들의 자취는 사라졌다. 요격미사일이 SLBM을 명중했다는 뜻이다. SLBM을 탐지해 동해 상공 수백km 고도에서 요격하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정조대왕함 승조원들이 어뢰 발사 훈련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잠수함 탐지력도 향상… 홍상어로 격침
해군 함정 중 처음으로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적 미사일과 잠수함을 탐지하는 스파이 레이더와 소나(Sonar, 음파탐지기)체계의 성능도 강화됐다. 규모도 길이 170m, 폭 21m, 중량 8200톤으로 구축함 가운데 가장 크다. 승조원은 200명가량이다.
정조대왕함이 지난달 31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출항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조대왕함에 최초 탑재된 통합소나체계와 항공 전력을 연계해 적 잠수함을 탐지하는 훈련도 진행됐다. P-3 해상초계기와 링스(Lynx) 해상작전헬기를 출격시키고 통합소나체계를 가동한 끝에 적 잠수함을 탐지, 장거리 대잠유도무기 홍상어로 격침했다.
통합소나체계는 선체 고정형 음탐기, 저주파 능동 예인 음탐기, 다기능 수동 예인 음탐기 등을 조합해 운용한다. 기존 소나체계보다 탐지능력이 월등히 높다.
정조대왕함 함교에서 승조원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함 마크에 정조 어필… 부국강병 꿈 잇는다
정조대왕함은 최신 함인 만큼 다른 함정에 비해 생활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다. 일과 시간 외에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체력단련실과 도서시청각실이 있다. 다만 풍랑이 거세 배의 흔들림이 심할 때 책을 집중해 읽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의무실에는 병상 4개와 방사선 기계가 설치돼있고, 승조원 식당은 한 번에 60명가량 수용할 수 있다. 아무리 최신식 시설이라 해도 비좁은 통로, 가파른 계단, 흔들리는 선체 같은 함정생활에 따르는 기본적인 어려움은 똑같아 보였다.
정조대왕함 체력단련실에서 승조원들이 운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함 내 곳곳에는 함명을 따온 조선 22대 국왕 정조와 그의 업적을 상기시키는 상징물들이 설치돼있었다. 함명은 근초고왕함, 선덕여왕함, 영조대왕함 등과 경쟁을 벌인 끝에 선정됐다고 한다. 정조의 조선 후기 문화부흥, 부국강병 등의 업적이 고려됐다.
정조대왕함 의무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동함대사령부 창설… 해외 작전도 수행
정조대왕함은 1일 제주 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창설된 기동함대에서 ‘대장선’ 격인 기함(旗艦)을 맡는다. 기동함대는 각각 동·서·남해를 관할하는 기존의 1·2·3 함대와 달리 임무와 역할에 따라 필요한 해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기동부대다. 평시에는 탐지·요격 능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고, 유사시엔 북방한계선(NLL) 등에 투입된다. 아덴만 해역 등에 파병돼 국제 해양 안보작전을 펼칠 뿐 아니라 해상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한 해외 임무도 수행한다.
기동함대는 세종대왕함급·정조대왕함급 이지스구축함과 충무공이순신함급 구축함 등으로 이뤄진 3개 기동전대와 소양함 등 군수지원함으로 이뤄진 1개 기동군수전대, 육상 기지 방호 및 지원 임무를 맡는 1개 기지전대로 구성됐다. 추후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이 건조되면 기동함대로 예속될 예정이다.
2일 정조대왕함(왼쪽)과 서애류성룡함(오른쪽)이 해군제주기지에 정박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초대 사령관은 김인호 소장이 맡았다. 김 소장은 “기동함대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대한민국의 주권과 해양권익을 보호하는 핵심 기동부대”라며 “유사시 압도적 전력으로서 전승을 보장하고 정부정책을 힘으로 뒷받침하는 부대로 발전시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창설식은 3일 오전 제주 해군기지에서 열린다.
부산·제주=김병관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