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고질적 병폐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
괴롭힘 등 대응 어려워···방송국만 책임 회피
직장인 5명 중 1명도 같은 ‘꼼수 계약’ 경험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캐스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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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숨진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호소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방송국들의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 관행이 다시 비판을 받고 있다. 프리랜서 등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는데, 방송국들이 꼼수 계약으로 노동법상 책임을 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캐스터는 2021년 MBC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 오 캐스터는 지난해 9월15일 세상을 떠났고, 숨진 지 4개월이 흐른 지난달 오 캐스터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긴 것이 알려졌다.
프리랜서 노동자는 괴롭힘에 대응하기 어렵다. 괴롭힘 금지법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받으려면 사용주의 지휘·통제를 받는 등 실질적인 ‘근로자’로 일했다는 것이 소송 등으로 증명돼야 한다.
방송사들은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과 간접고용을 악용하며 직접고용에 따르는 여러 법적 책임을 피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22년 발표한 ‘방송사 비정규직 근로여건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2021년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 인력 중 9199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중 32.1%(2953명)가 프리랜서, 19.2%(1769명)가 파견직, 15.3%(1406명)가 용역업체 노동자였다. 그해 지상파 신규 채용 방송제작인력 237명의 64.1%(152명)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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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 문제제기 직후 MBC의 대응도 무책임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MBC는 지난달 28일 “일부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고인이 사망 전 관계자 4명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다면,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바란다”며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유족 요청 등이 없더라도 조사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 등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MBC는 뒤늦게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무늬만 프리랜서 계약 관행은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일 공개한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 17.9%가 지휘·명령을 받으면서도 프리랜서 계약을 하는 ‘불법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MBC는 근로계약 체결 여부와 무관하게 오 캐스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며 “MBC는 필수적인 업무를 하는 기상팀 아나운서들과 노동자들을 프리랜서가 아닌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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