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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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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 보관된 한글박물관 불… 쫓기는 ‘휴일공사’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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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증축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소방당국의 대처로 4시간 만에 진화됐다. 다행히 소방관 한 명의 경상을 제외한 추가적 인명 피해나 박물관 내 소장품 훼손은 없었다. 다만 이번 피해가 그동안 공사장 ‘안전 사각지대’로 여러 차례 지적된 ‘휴일 작업’에서 비롯된 것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0분쯤 국립한글박물관 옥상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50분 만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한 데 이어 약 4시간 만인 12시31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진화 작업에는 장비 76대와 인력 262명이 동원됐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옥상에서 화재가 발생,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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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절단 중 화재 추정…소방대원 1명 경상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대원 1명이 딛고 선 작업 발판이 빠지며 2m 아래로 추락한 뒤 철근 낙하물에 부딪히면서 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박물관 안에 있던 작업자 2명은 구조됐고 4명은 스스로 피했다.

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건물 4층을 6층으로 증축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0월까지 휴관에 들어간 터라 다행히 관람객은 없었다.

화재로 박물관 3층과 4층이 전소됐지만 문화유산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박물관 측은 불이 난 직후 ‘월인석보’, ‘정조의 편지’ 등 지정 문화유산 26건(257점)을 인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이날 안전관리자 근무 여부, 작업자들의 현장 소화기를 활용한 초기대응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문화재청 등 관계자들이 소장품을 옮기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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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당국은 산소절단(산소를 연료로 금속 절단) 작업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소절단기로 증축 현장 내 철근을 자르는 과정에서 불티가 튀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소방당국 측 설명이다. 산소절단 작업은 용접작업보다 불티가 더 많이, 더 멀리 튀어 위험하다. 여기에 일반 공사현장과 달리 주변에 가연성, 유독성 마감재들이 많은 증축공사 현장의 특성이 맞물리며 화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휴일공사 사고발생률 1.4배↑…안전관리자 부재 등

사고가 휴일인 토요일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휴일근무’의 문제점이 지적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중대건설현장 사고의 36%가 휴일에 발생했고 주말이 평일보다 최대 1.4배 더 많다. 이른바 ‘돌관공사(突貫工事)’로 불리는 휴일 작업은 공사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시공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작업자는 평일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추가로 작업하는 것이라 업무 집중력이 떨어지고 안전 관리에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휴일에는 직원 휴무를 보장하기 위해 일용직을 쓰다보니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 일용직의 경우 현장에 대한 상황 파악과 일의 숙련도, 팀워크 등이 정규직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안전관리자 숫자가 제한적인 소규모 시공업체의 경우 휴일 안전관리자 없이 작업하는 일이 빈번해 안전 관리 역량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국립한글박물관의 증축공사 기간 동안 휴일근무가 여러 차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토요일날 근무는 주 52시간 범위 내에서 필요하면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1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진압을 위해 출동준비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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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게 건설업에 종사 중인 박경재(65) 상산건설 대표는 “약속한 일정을 안 지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니까 작업 속도가 느린 것 같으면 휴일근무를 강행할 수밖에 없어 직원들에게 휴일근무를 부탁한다”며 “거절하면 어쩔 수 없이 일용직을 고용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하고 그나마도 안전관리자는 일용직 구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천재지변은 공사기한에서 빼준다고 하지만 관련 절차부터 인정받기까지 복잡하고 발주처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원칙이 제대로 정립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휴일 근무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은 과거부터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1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능한 공공사업의 공휴일 작업을 꼭 필요한 곳 외에는 최소화하려고 한다”며 “민간 건설 현장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국립한글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소관으로 서울시는 이번 화재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휴일근무 근절이 이번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건설 현장은 날씨 문제나 건축 자재가 늦어진다거나 변수가 많은데 공사기한을 계약서대로 너무 칼같이 자르다 보면 휴일근무를 강행할 수밖에 없고 사고가 나면 사회적 피해만 늘어난다”며 “정부가 공사장의 다양한 변수가 일정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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