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시 국회의장과 협의 의무' 등 37개 조항 개정 제언
"계엄 남용 방지 장치 반영됐다면…무모한 계엄 예방했을 것"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지난해 12월 4일 새벽 무장 계엄군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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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약 6년 전 문재인 정부 국방부가 계엄의 민주적 통제방안을 연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의 계엄 검토 논란이 일자 추진된 것이었다. 연구 결과대로 '계엄 선포 시 국회의장과의 협의 의무' '국회에 대한 보고 의무' 등 계엄 견제·통제 장치들이 마련됐다면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이 연구를 통해 총 37개 조항의 법 개정 제언이 이뤄졌는데, 이 가운데 단 1건도 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연구를 맡긴 정부나, 기무사의 계엄 검토를 비판했던 정치권 모두 직무유기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국회에선 이번 계엄 사태 이후 뒤늦게 이 연구 결과 등을 참고해 모두 50여 건의 계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대통령이 계엄 선포할 땐 국무회의의 심의·국회의장과의 협의 거쳐야"
1일 뉴스1이 입수한 '계엄의 민주적 통제방안 연구'는 국방부가 의뢰해 처음헌법연구소가 작성한 254쪽 분량의 연구 결과 보고서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계엄 제도 개관 △국내외 계엄 선포 사례 △계엄 관련 국내 주요 판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계엄 등 국가긴급권 제도 △계엄의 민주적 통제 방안 등으로 구성됐다.
연구소는 우선 계엄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이념적 지향을 분명히 함으로써 계엄법과 그 하위법령 해석의 지침을 제시하도록 계엄의 이념 신설을 주문했다. 연구소는 인권침해와 민주주의 후퇴 등 부작용을 낳은 과거 계엄 사례를 언급하며 "계엄은 오직 헌법에 규정된 엄격한 요건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선포돼야 하고, 계엄을 실시함에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유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계엄 선포에 국회의 사전 승인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계엄 선포 요건이) 지나치게 완화된 감이 있다"라면서 계엄법 제2조 제5항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 및 국회의장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라고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국무회의가 계엄을 선포할 때 프랑스는 총리, 양원의장, 헌법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고, 터키는 국가안보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 포르투갈은 정부와 협의하고, 헝가리는 국회의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와 협의해야 한다. 아울러, 캐나다는 총독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 부총독과 협의해야 한다.
이 연구의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조유진 처음헌법연구소장은 국회의장과의 협의 의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상의해 계엄을 선포하도록 하는 등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계엄 선포권 남용을 막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계엄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선포되는 것이지만, 혼자 판단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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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시행 중 국회 상시 개회…계엄은 자유민주 체제 보위 최소한의 갑옷"
이번엔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만약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의 국회의원 체포·구금으로 국회 자체가 소집되지 않았다면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구소는 "국회가 소집되지 않으면 계엄 시행 중에 예상되는 각종 인권침해나 계엄 당국의 권한 남용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없을 것"이라면서 "계엄 시행 중 국회의 상시 개회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한 날로부터 15일 내에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지 않은 경우엔 국회의장이 계엄의 해제를 공고할 수 있도록 특례를 신설할 것을 연구소는 제언했다.
연구소는 "계엄은 자유민주국가가 스스로의 체제를 보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갑옷"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는 자유민주 국가에 계엄과 같은 국가긴급권은 헌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계엄은) 최대한 아껴서 가급적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라며 "불가피하게 사용하더라도 그로 인해 헌정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계엄군이 국민의 편에 서 있다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면서 "국민의 자발적 협조와 국군에 대한 신뢰야말로 국가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949년 제정된 계엄법은 총 11차례 개정됐지만 가장 큰 폭의 개정은 1981년 제1차 개정이며, 그 이외의 개정에선 용어 또는 표현의 변경에 그쳤다. 이 때문에 현행 계엄법은 일본의 계엄령을 본떠 제정됐을 당시와 큰 차이가 없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나마 1997년에 계엄 관련 손실보상 절차가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계엄법)로 정하도록 바뀐 점이 진일보한 부분이다.
처음헌법연구소의 연구 결과는 단 1건도 계엄법에 반영되지 않았다. 연구를 맡긴 국방부나, 기무사의 계엄 검토를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 모두 손을 놓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선 이번 계엄 사태 이후 뒤늦게 50여 건의 계엄법 개정안이 발의돼 각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의 절차를 밟고 있다.
책임연구원으로서 이 연구에 참여했던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계엄의 민주적 통제를 통해 계엄 선포권이 남용되지 않게끔 제도적 장치들을 제안했던 것인데 그 이후 계엄법이 개정이 안 됐다. 많이 아쉽다"라며 "만약 보고서 내용이 조금이라도 반영됐으면 이번과 같은 무모한 계엄 선포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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