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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화)

온난화로 폭우-가뭄 널뛰기… ‘기후 위플래시’가 LA 산불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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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극단적 현상 오가는 이상기후

지구온난화로 수분 증발 늘고, 가뭄 발생해 산불 위험성 상승

대기엔 수분 많아져 폭우 빈발… 이상기후에 질병-인명피해 속출

한국도 ‘기후 위플래시’ 가능성… “물관리-공중보건 시스템 개선을”

동아일보

《가뭄-폭우 극단 오가는 ‘기후 위플래시’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수분 증발량이 많아지고 가뭄이 발생한다. 반면 대기는 더 많은 수분을 흡수하며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이상기후 현상인 ‘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에 대해 알아봤다.

# 2018년부터 3년간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선 가뭄이 들어 농작물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 보리 수확량이 연간 10% 감소했고 독일에선 밀 수확량이 연간 18% 줄었다. 독일 헬름홀츠 환경연구센터는 “2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라고 했다. 하지만 2021년 여름 독일과 벨기에에선 ‘100년 만에 최악’으로 평가받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최소 240명이 숨졌다.

# 2020년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 40여 년 만에 발생한 가뭄으로 농경지 피해가 발생해 2000만 명이 식량 부족을 겪었다. 2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소말리아에서만 4만4000명이 숨졌다. 그러나 2023년 말 동아프리카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에선 수백 명이 숨졌다.

# 지난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선 48시간 만에 18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연평균 강우량의 절반이 단 이틀 만에 내린 것이다. 홍수와 산사태가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달 7일부터 LA 일대에는 팰리세이즈 산불, 이튼 산불, 허스트 산불이 이어졌다. 대형 산불 3건의 피해 면적을 모두 더하면 193.8㎢로 서울시 면적(605.2㎢)의 약 3분의 1에 달한다. 주택 1만2000여 채가 소실됐고 최소 28명이 불길이나 연기를 피하지 못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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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유럽과 동아프리카, 미국의 재해 사례는 모두 가뭄이 이어지다 폭우가 발생하거나 홍수가 일어난 뒤 가뭄이 들고 대형 화재가 잇따르는 등 이상기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수중기후 채찍질’이라는 뜻이다. 학계 등에선 이해를 돕기 위해 ‘기후 위플래시’라고 표현한다.

● 지구온난화로 발생한 ‘기후 위플래시’

‘기후 위플래시’는 지구온난화로 발생한 현상이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수분 증발량이 많아지고 지면에선 가뭄이 발생한다. 반면 대기에는 더 많은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는 ‘대기 스펀지’가 만들어지는데, 식물과 토양에서 많은 수분을 앗아가 가뭄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대기 스펀지’는 많은 양의 수분을 계속 빨아들이다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이기지 못하고 물 폭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가뭄과 폭우가 번갈아 이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렇게 발생한 폭우와 가뭄은 단일한 재해로 그치지 않는다. 가뭄으로 말라 갈라진 땅에 물 폭탄이 쏟아지면 홍수가 발생하기 쉽다. 가뭄이 이어져 홍수를 막을 수 있는 수목들이 대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은 나무들도 바싹 바르면서 불붙기 딱 좋은 ‘자연 장작’이 된다. 자칫 작은 불이라도 번지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발생한 LA 팰리세이즈 산불 등의 사례도 동쪽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인 ‘샌타애나’ 등이 화재를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런 상황을 두고 “알맞은 산불 레시피”라고 했다.

대니얼 스웨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팀에 따르면 최근 70년간 기후 위플래시는 최대 66% 늘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3도 정도 상승하면 ‘기후 위플래시’는 2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지표면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수분량은 7%씩 늘어난다. 스웨인 교수는 “수분을 빨아들이는 ‘대기 스펀지’는 은행의 복리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말했다.

이상기후 현상은 질병과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비영리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2050년까지 1조1000억 달러(약 1600조 원)의 건강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극심한 재해는 댐이나 상수도 시스템 등 각종 인프라를 망가뜨린다. 2017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쏟아진 폭우로 오로빌 댐이 파손됐다. 수위가 사상 초유의 높이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배출 수로를 열자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수로 벽이 붕괴됐다. 당시 댐 일대 주민 20만여 명이 집을 떠나 대피했고 복구에만 11억 달러(약 1조6000억 원)가 소요됐다. 이상기후로 인한 인프라 피해만 2030∼2050년 10조4000억 달러(약 1경5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기후 전문가들은 “20세기 극한 상황에 맞게 설계된 물관리 인프라와 공중보건 시스템은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 변화로 곧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며 “당장 파손되지 않았더라도 향후 ‘기후 위플래시’를 견디기 위한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개도국에 더 가혹한 기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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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 국가 짐바브웨는 2017년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의 피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년간 가뭄에 시달리다가 닥친 홍수로 이재민 수백만 명이 발생했고 최소 246명이 숨졌다. 선진국과 달리 짐바브웨 등 개발도상국들은 홍수 조절 댐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피해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보엔 장 홍콩이공대 교수팀에 따르면 2010년 전 세계 소득 하위 20%는 30년 전인 1980년에 비해 기후 위플래시로 인한 피해를 24∼48% 더 겪었다. 장 교수팀은 “급격한 피해 증가율이 나머지 80%에서는 관찰되지 않았다”며 “기후 적응 실패에 따른 피해는 빈곤한 지역에 집중된다. 빈곤 지역이 단일한 재해가 아닌 기후 위플래시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의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기금 조성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25일 폐막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는 개도국의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2035년까지 공공 및 민간 재원을 합쳐 매년 1조3000억 달러(약 1827조 원)의 재원을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23년 6차 보고서에서 개도국이 기후 적응을 위해 2030년까지 연간 1400억∼30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는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하는 17가지 목표를 규정하고 있다. 홍진규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개도국들과 함께 빈곤 퇴치와 기아 종식 등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선진국들의 공적개발원조(ODA)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동아시아에도 ‘기후 위플래시’ 가능성

동아시아도 ‘기후 위플래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계에서는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발생하는 빈도가 이미 잦아졌다고 보고 있다. 김형준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동아시아는 가뭄보다는 홍수가 극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과거엔 5, 6년에 한 번 찾아왔던 기상의 극단적 변화가 최근 들어 1.7년에 한 번인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기후 위플래시’로 추정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2020년 8월 폭우로 섬진강댐 수위가 높아지자 정부는 댐 방류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섬진강 하류의 주민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불과 2년 반 뒤인 2023년 전남 지역에는 가뭄이 들어 여수와 광양 산업단지에서는 용수 부족으로 공장 가동에 비상이 걸렸다. 기존 인프라로는 기후 위플래시로 인한 피해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 교수는 “상수도 관망 공사를 할 때 물길을 복선화하는 작업을 많이 한다”며 “이와 비슷한 원리로 물을 담아둘 수 있는 용량을 지금보다 늘리는 방향의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의 지면을 물이 잘 흡수되는 새로운 소재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과학 평론가 안자나 아후자는 “콘크리트가 아닌 비를 잘 흡수하는 소재로 도로를 포장하는 ‘스펀지 시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가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우가 쏟아지다가 가뭄이 드는 등 기후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가 더 많은 수분을 포함할 수 있게 되면서 기후변화가 발생한다. 직역하면 ‘수중기후 채찍질’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국내 학계 등에선 ‘기후 위플래시’라고 표현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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