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산업1부장 |
얼마 전 만난 한 장관급 인사가 “요즘 젊은이들은 편한 것만 하려고 든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처음부터 좋은 직장만 찾으려 하니 나라 미래가 걱정”이라고 말했을 때, 이는 공직자로서 매우 위험한 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인 자리의 푸념이라 넘기기엔, 관료들의 이런 사고가 정부의 국정 철학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혹여나 이번 명절 때 취업준비생 조카에게 비슷한 훈수를 뒀다면 괜한 꼰대 짓을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한다. 우리 사회가 청년들로 하여금 성에 안 차는 직장이라도 빨리 잡느니 차라리 장기 취준생으로 남도록 부추기고 있어서다.
경직된 고용 시장이 경제 생산성 저해
평균 연봉이 9000만 원에 이르는 현대제철 노조가 최근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 회사는 중국의 저가 공세로 영업익이 60% 급감하며 실적 한파를 겪고 있지만 노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역대 최대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연봉 1억2000만 원 선인 KB국민은행은 노조가 성과급을 300% 올려 달라며 파업 목전까지 갔다가 250% 인상으로 겨우 봉합했다. 대기업과 금융사 노조의 이런 모습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된다. 강력한 투쟁력과 파업권을 무기로 실적 악화나 이자 장사 논란에도 매년 엄청난 임금 인상을 관철시켜 왔다. 그 결과 국내 대기업의 대졸 초임은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몇 배가 큰 일본보다도 60%나 높은 수준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노동 계급은 철옹성과 같다.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이들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구직자들이 온 힘을 다하지만 쉽게 넘볼 수 없다. 작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직장을 옮긴 전체 중소기업 근로자의 12%만이 대기업에 입성했다. 평균 연봉이 1억 원에 육박하는 현대차 생산직은 재작년 10년 만에 공채에 나섰는데 수만 명의 지원자가 폭주해 서버가 다운됐다. 대기업 취업 문이 바늘구멍인 이유는 일단 한 번 뽑고 나면 해고가 어렵고 갈수록 연봉이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고비용 구조라 기업들이 채용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소기업 격차와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가 이처럼 견고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별 볼 일 없는 직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느니, 장기 백수로 남더라도 대기업의 문을 계속 두드려 보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진정성 있다면 국가 위한 결단 내려야
유재동 산업1부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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