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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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SNS상에서 봤던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롯데자이언츠의 광(狂) 팬이면서, 아마추어 레벨에선 수준급 테니스 실력을 지닌 '스포츠맨'이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하고 가끔씩 최신 영화도 챙겨보면서, 클래식 음악 관련 감상평까지도 남겨주는 소위 '친절한 판사 아저씨' 였죠.
그가 쓴 글은 마치 음식으로 치면 잔치국수와 같은, 검소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가운데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마침표가 찍혀 있었습니다. 문장이 전하는 메시지도 모호하지 않았고요.
그가 문재인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됐을 당시 PK 출신으로 최고의 학벌인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엘리트 공무원'이 됐고, SNS 활동도 활발했던 측면에서 보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닮은 구석이 제법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다면 한 분(문형배)은 소위 '정치 영역' 관련 내용일 땐 본인의 감정을 녹이되 최대한 에둘러 글을 쓰고, 다른 한 분(조국)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직설적으로 썼다는 것이죠. 현직 판사이기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과 성의를 보이려는 흔적은 남겼다고 해야 할까요?
문 대행은 지난 2014년 6월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쉽다"고 썼습니다. 구체적 설명 없이, 아쉽다는 세 글자만 올려놨죠.
댓글 대부분이 선거 관련 내용으로 달렸고, 직접적으로 PK 지역 선거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분도 계셨습니다. 한 분이 "당선 지도가 바둑판 같다"고 하니, 문 대행은 "바둑을 잘 몰라서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라며 구체적 언급은 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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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견해를 조금 더 드러낸 적도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혜성처럼 정치권에 등장한 뒤 처음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와 민주당을 탈당한 뒤 국민의당 창당을 선언했던 날요.
이 글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이 있더군요. 항우가 25세에 출세하였으면 성공하였을 것인데, 24세에 출세하였으므로 성공을 보지 못했다"고 댓글을 쓰자, "특허침해 소송에서 이겼는데 망한 중소기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판결 확정시까지 몇 년 걸린 거죠"라고 답했습니다.
다음 날엔 "집을 그릴 때 많은 사람들이 지붕부터 그리고 그 밑에 기둥을 그리죠. 그러나 집을 지으려면 기초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야죠. 모름지기 사법도 정치도 그래야 할 듯"이라고 썼고, "사람의 집합체인 조직이 기초에 해당하겠죠"라는 댓글도 하나 더 달았습니다.
(참고로 2012년 9월21일 갤럽 여론조사 '대선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후보는 박근혜 후보와 46%로 같았고, 문재인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43%와 46%로 나타났습니다.)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2016년 1월9일 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은 자신의 전부를 던져야 하는 직업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괴리가 정치 과정을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굉장히 원론적인 내용인데, 시기적으론 미묘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지낸 안철수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문재인의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한 날이기 때문이죠. 총선을 석 달 앞두고 '민주당 분당'으로 야권표가 갈려,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할 것이란 전망들이 잇따랐던 때이기도 했고요.
문 대행은 지난 2013년 11월23일엔 "자신의 가치를 추구해도 모자란 게 인생인데, 허구한 날 누구 반대, 무엇 반대라니. 그 반대가 무너지면 어쩌려구(고)"라고 썼습니다.
이 글에 사법연수원 동기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만들어서 반대.."라는 댓글을 달자, 그 밑에 "비판을 해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하고, 자신은 그 비판에서 자유로운지 성찰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한 거 같아요"라고 '대댓글'을 답니다. 댓글이 몇 개 더 달린 뒤엔,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이 동의어는 아니죠"라는 글도 썼고요.
그 날 민주당은 황교안 법무부장관에 대한 해임을 추진했지만 여권 반대로 무산됐고, 농민들은 쌀 목표가 23만 원을 보장해달라며 서울광장에 집결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안철수 전 교수가 본격적인 정치 참여를 예고하며 '신당 창당'을 선언한 날이기도 했고요.
문 대행은 지난 2014년 말에도, '비슷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14년 12월20일 "소수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소수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글을 씁니다. 어떤 분이 "헌재 판관이 소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고요.
닷새 뒤,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뚜렷했던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사건으로 접수됐을 때 법률의 해석만으로 부족하고 헌법의 관점에서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헌법은 한국의 법률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과목입니다. 헌법은 법과 정치가 교차하는 영역인데 한국의 법률가들은 정치를 다룬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논란이 큰 사건에서 여론의 압력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엔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면서도 정치의 사법화를 현명하게 통제했으면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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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틀 뒤엔, "사실 성공적인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적은 이데올로기, 도덕성, 공포이다.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정부는 실패하기 쉬운데,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경험을 받아들이는데 필수적인 개방성을 낳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 사고체계를 낳는다"는 영국의 헌법학자(Vernon Bogdanor)와 유시민 전 장관의 글을 재인용해서 올리기도 했는데요. 공교롭게도 첫 글이 올라오기 바로 전날, 헌재는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문 대행은 과거 헌법재판관 후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당시 헌재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최근 저희(TV조선)와의 잇따른 통화에서도 "통진당 노선에 반대한다. 이 글들은 통진당 해산 선고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바 있습니다.
그 당시 헌법재판관 8명은 통진당 해산에 찬성했지만, 민주당 추천 몫 김이수 재판관은 유일하게 반대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또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안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면서요.
우연일지 모르겠으나, 그때 김이수 전 재판관이 언급했던 "소수자"란 표현이 문 대행 글에 똑같이 등장합니다. 김 전 재판관은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단 법률 대리인단의 공동대표로,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 공익활동 기부단체로 알려진 재단법인 '공감'에는 정계선 헌법재판관의 배우자인 황필규 변호사가 속해 있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탄핵소추에 대한 판단을 국회(의회 상하원)가 아닌 헌재가 합니다. 사건을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오로지 법에 기초해 판단하라는 취지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 대행이 비록 정치 성향을 간접적으로라도 엿볼 수 있는 글들을 올리긴 했습니다만, 자신의 10여 년 전 말처럼 퇴임 직전까지 "사법의 정치화를 경계하면서도 정치의 사법화를 현명하게 통제했으면" 합니다. 때마침 천재현 공보관이 31일(오늘) 브리핑에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함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처럼요.
백대우 기자(run4fr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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