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간병·요양 일자리는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현재의 돌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일과 삶 속에서 저임금 불안정 고용 그리고 낮은 은퇴 소득이라는 생애주기 불균형적 패턴이 유지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차별·파편화되고 분리된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 무급 돌봄노동과 돌봄책임의 불평등한 분배는 그 결과다. 반면 돌봄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개인과 사회는 돌봄 비용을 불균형적으로 부담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그대로 놓인다. 어느 순간 돌봄경제와 노동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충돌 영역이 되었다.
게다가 개인과 가정에 전가하는 문제는 여성에게 ‘이중 부담’을 준다. 여성은 자녀와 부모 돌봄을 위해 일을 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동안 여성의 노동력 참여를 높인다는 정책 목표와 단편적인 개혁 및 인센티브 접근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제는 돌봄경제 속에서 돌봄노동의 불평등과 구조적 장벽을 깨트려야 한다. 무엇보다 비공식적인 무급 돌봄을 국가와 사회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터와 고용관계, 유아 교육 및 돌봄, 유급 휴가, 장애 및 노인 돌봄, 간병을 위한 재정 지원 등 구조적 시스템을 모두 바꿔야 한다. 돌봄사회는 일할 권리와 함께 돌봄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돌봄 친화적 지역 공동체는 우리 사회에서도 논의 중이다. 돌봄의 제도적 구현을 위한 여러 해법들이 제시됐다. 특히 서울 성동구는 기초 지자체 차원에서 의미 있는 정책실험을 몇년째 시행하고 있다. 작년부터 공공성 높고 처우개선이 시급한 필수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필수노동자 수당 지급과 사회보험료 지원이 대표적이다. 저임금 늪에 빠진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공동주택 청소미화 노동자를 대상으로 공적이전 소득지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565명의 돌봄과 필수노동자가 적용받는다.
영국 노동당의 집권 100일 플랜에서도 보건의료와 돌봄분야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부터 영국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 표준에 기반한 전국 돌봄 서비스 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독일(ver.di), 프랑스(Cfdi), 영국(UNISON)의 노동조합도 돌봄노동의 가치인정과 제도개선을 요구한 지 오래다. 민주주의 보편적 시민권의 확대는 돌봄경제가 사회적 책임이면서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인식의 전환부터다. 이제는 모두를 돌본다는 사회적 합의 속에 기존의 제도와 현실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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