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참여정부 최고권력자의 심경 토로였지만, 이제 우리만의 얘기가 아니다. ‘천조국’ 미국에선 백악관부터 이런 장면이 버젓이 펼쳐졌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장. 단상에 이른바 빅테크 거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구글 CEO, 아마존 창업자, 메타 CEO…. 이들 자리는 심지어 국방장관 등보다 앞섰으니, 트럼프 2.0의 현실이다. 민주당 정부가 반독점 차원에서 구글을 쪼개니 마니 하던 게 바로 엊그제다.
바야흐로 돈의 시대다. 밥 먹여주고, 일하게 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다, 솔직히. 그럼에도 막 내놓고, “돈벌이가 제일 중요해”라고 해버리면 너무 저속하지 않나.
이런 풍경이 불편한 반대편에 선 이들은 견제구를 날려본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고별사에서 “권력이 아주 소수 초부유층의 손에 위험하게 집중됐다”고 말했다. 소수 특권층에 의한 ‘과두제(oligarchy)’를 개탄한 것이다. 앞서 독일 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회고록에서 트럼프를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자”라 직격했다.
정의니, 불평등이니 하는 고상한 구호보다는, 트럼프 책 제목처럼 ‘거래의 기술’이 더 찬양받는 시대다. 다수 대중은 빈부격차야, 젠더갈등이야 어찌되든 자기 주머니나 장밋빛 미래에 더 관심 있는 표정이다.
그러나 먹고살 만해졌다고 부조리가 사라진 게 아니다. 핵심은 계층 간 불평등이다. 한국 사회가 이만큼 올라선 원동력은 평등의식이라고, 이게 K민주주의를 지탱하고 키워온 힘이라고, 난 믿는다.
미국 보수들은 한동안 음모론에 빠졌다. 예컨대 ‘피자게이트’ 같은 거다. 비뚤어진 잣대로 비난하다가 정권을 바이든에 내줬다. 마치 ‘선거부정론’에 매몰된 12·3 비상계엄 일당 같다. 반면 미 민주당 진영은 ‘PC’(정치적 올바름)에 빠져 일을 그르쳤다. 임신중지 등 진보의 가치를 앞세우기 급급했다. 자연스레 서민들 ‘밥그릇’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 결과가 트럼프 재집권이다. 우리 86세대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시민의 삶을 투영한 ‘시장’의 선택은 종국에는 옳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을 주무르는 거대 자본, 그와 결탁한 정치·행정권력은 전혀 다른 것들이다. 권력을 선뜻 시장에 맡겨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1995년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 솔직히 이 나라 꼴은 아직도 비슷하다. 게다가 경제권력이 ‘제4부’처럼 행세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제어하면서 불평등을 줄이는 게 정치의 책무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요즘 미국을 보니 얼마 전 여의도 정가에서 들려온 이 말이 제법 와닿는다. 그러나 아무 쥐나 잘 잡는다고 꼭 ‘좋은 고양이’는 아니다. 다음 정권은 그 누가 됐든, ‘시장통 살찐 고양이’가 되지 못하게 시민들이 쥐덫이라도 놓아야 할 것이다.
전병역 경제에디터 |
전병역 경제에디터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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