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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1 (금)

거리와 시장, 편의점과 경비초소에서···구슬땀으로 설 연휴 채운 시민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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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마지막 날인 30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상 장순자씨(67·왼쪽)와 김복임씨(92)가 매대 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씨는 연휴 없이 출근한 주변 상인들에게 믹스 커피를 직접 타 나누며 바쁜 아침을 열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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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인 30일에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은 오전부터 매대를 펼친 상인들로 활기가 넘쳤다. “빨간 날엔 일찍부터 나올 수 있으니까, 설 연휴 내내 나왔죠.” 의류 노점상을 운영하는 장순자씨(67)가 말했다. 시장 내 점포 상인들과의 협의로 이곳 노점상들은 평일 오후 5시(혹한기는 오후 4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 일요일 같은 ‘빨간 날’은 아침부터 영업할 수 있다. 남대문시장 노점상에게 설 연휴는 쉬는 날이 아니라, ‘일찍 나올 수 있는 날’이다.

경향신문은 민족 대명절인 설에도 일터를 지키고, 일감을 붙드는 이들을 현장에서 만났다. ‘설이 대목이어서,’ ‘근무를 바꿀 수 없어서,’ ‘생계를 위해서’ 등 연휴를 누리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지만, 2025년 새해를 맞아 품은 소박한 희망과 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씨는 올해 소원을 “딱 하나, 가족의 건강”이라고 했다. 남편은 지난해 심혈관 수술을 받았다. ‘평생의 동반자’가 입·퇴원하는 모습을 지켜본 그는 “몸이 건강해야 한다. 그거면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 땅콩·고춧가루 등을 파는 김복임씨(92)도 연휴 내내 쉬지 않고 시장에 나왔다. 김씨는 “바람 쐬듯 나왔다”고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한 지도 70년이라는 그는 “올해는 정치가 시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나는 다 살았지만, 젊은 사람들을 위해 세상이 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명절이 더 바쁜 사람들


관광버스 기사 진정현씨(55)가 30일 서울 중구 숭례문이 바라다보이는 길가에 버스를 대고 서울 중구 명동으로 관광을 간 대만 국적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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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 기사 진정현씨(55)는 서울 중구 숭례문이 보이는 도로변에서 명동을 관광하러 간 대만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27일부터 오는 31일까지 대만 관광객들의 여정을 책임지는 중이었다.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온 진씨는 “빨간 날이 더 바쁘니, 부모님도 제가 본가에 못 갈 걸 으레 아신다”고 했다. 남들 다 고향을 찾는 명절, 귀성길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애써 눌러야 하는 이유는 결국 생계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놀러 왔으면 좋겠다”고 새해 소원을 말했다.

“계엄 이후로 일정이 50% 이상 취소됐어요. 겨우 풀어지려 하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그제 에어부산 화재까지. 외국인들이 불안해하는 게 느껴져요.” 진씨가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2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세 건의 관광 예약이 취소돼 보름 가까이 쉬었다. 잇따른 사고가 저비용항공사(LCC)를 이용하는 관광상품·관광객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설 연휴 마지막인 30일,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경비원 현봉익씨(75)가 경비 초소를 지키며 미소 짓고 있다. 오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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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경비원인 현봉익씨(75)는 이날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30분까지 하루를 꼬박 일하는 중이었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24시간 맞교대’ 근무라 설날 당일에는 쉬며 차례를 모셨지만, 이날은 근무를 해야 했다. 경비원에게 명절 근무는 녹록지 않다. 현씨는 “명절엔 비는 집이 많아 경비를 더 엄하게 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저도 건강하고, 나라도 안정되길 바란다”며 “생활 물가로 서민들이 고통받지 않게 지도자들이 잘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연휴도 ‘평소’처럼


지난해 군대에서 전역한 윤일식씨(23)가 서울 마포구 한 편의점에서 30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오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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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점장 오모씨(31)는 “하루도 못 쉬었다”고 했다. 전북 남원의 부모님께는 전화로만 안부를 전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위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새해 소망을 말했다.

서울 마포구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윤일식씨(23)는 지난해 하반기 군대에서 전역한 뒤 아직 채 자라지 않은 까까머리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가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이유는 ‘학비’였다. 대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백화점 단기 경호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윤씨는 “복학해 졸업한 뒤엔 일러스트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30여년차 택시 기사 손금용씨(71)가 30일 오전 자신의 택시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느니 나왔다’던 그는 잡히지 않는 손님에 “집에 돌아가 손주들을 보러갈 것”이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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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느니 나왔다”는 택시기사 손금용씨(71)는 텅빈 거리, 잡히지 않는 손님들로 인해 귀가 채비를 하고 있었다. 30여년 개인택시를 몬 그는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을 쓰지 않고, “길에서 만난 손님들만 모신다”고 했다. 스마트폰 대신 인도 쪽을 바라보는 버릇과, 손님을 찾아 인도 쪽에 붙어 운전하는 습관도 여전하다. 그의 택시를 이용하는 주 고객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노인층이 대부분이다. 오전 11시부터 나온 손씨는 1시간 운전하고 5500원 손님 한 명을 태웠다. 그는 “혹시나 해서 나와봤는데, 손주들 보러 집에 돌아가야겠다”며 “새해 소망은 큰 거 없다. 두 딸 가족까지 가족 모두의 건강과 안녕, 그거면 된다”고 말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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