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어떤 영역이든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과 같은 존재다. 2022년 챗GPT 발표 이후 AI는 2023년 GPT-4, 2024년 퍼플렉시티(Perplexity)와 며칠 전 발표된 딥시크(DeepSeek)-R1에 이르기까지 개발사와 모델은 다르지만, 유통, 금융, 제조, 헬스케어 등 전 산업군에 걸쳐 탁월한 성능과 폭넓은 활용범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유독 맥을 못추는 분야가 있다. 바로 리걸테크(LegalTech) 영역이다. 법률 영역에서도 AI가 잘 작동하며, 충분히 쓸 만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다른 분야에서 AI의 활약상에 비하면 미흡하기 그지없다. 특히 국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법률 AI가 힘을 못 쓰는가? 이는 법률 AI가 잘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학습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리걸테크 기업이 제대로 뿌리내기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간 많은 이들이 사법권력을 국가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법개혁을 부르짖었다. '사법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소명에 따라 300명에 불과했던 사법시험의 정원이 1000명으로 늘기도 했고, 이른바 로스쿨이라 불리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사정기관 개혁 또한 동시에 진행되었다.
국내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제외한 하급심 판결의 경우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정보보호와 같은 순기능도 가지고 있지만, 판결문이 법률 AI의 발전을 위해 활용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법원에서 제공하지 않는 하급심 판결을 수집하여 익명 처리 후 제공하는 엘박스(Lbox)와 같은 리걸테크 기업이 등장하였지만, 데이터 수집과 가공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률 AI는 과거 네이버 '지식iN'에게 물어봤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없어 답답해했던 일반인에게 법률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소나기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또 법률 AI는 변호사를 찾아가기 전 사건의 쟁점을 파악하고, 대략적으로 갈피를 잡은 채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작년 7월 출간된 '월 20달러로 고용하는 AI 변호사 with 챗GPT'라는 도서가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을 쓴 김덕은 변호사는 챗GPT의 유료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계약서, 고소장 작성과 판결문 분석은 물론, 나만의 고문 변호사를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챗GPT가 국내 법령, 특히 시행령, 행정규칙과 행정지도에 대한 학습이 부족하고, 대법원 판례를 제외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해 심도 있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인이 간단한 법률 상담을 하거나,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도움을 받기엔 이만한 조력자가 없다.
반면 변호사법은 제1조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변호사의 사명을 명시하고 있다. 변호사법이 라이선스를 보유한 변호사의 직역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인권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변호사법의 제정 취지를 잊어서는 안된다.
법률 AI는 일반인이 보다 쉽고, 저렴하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변호사가 보다 효율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제 더 이상 법률 AI를 법과 제도의 틀에 가둬서는 안된다. 앞으로 AI를 잘 활용하는 이들이 법률 시장에서 승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황보현우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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