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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6 (목)

[초동시각]퇴임 후 더 빛난 카터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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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일기로 타계한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만 해도 통상적 기준에 따른 ‘성공한 대통령’으로 분류되지 못했다. 당장 연임에 실패한 것만 해도 그렇다. 1980년 미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한 그는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겨우 49명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는 20세기 대선 역사상 최악의 참패(선거인단 기준)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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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전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의 임기 중 미 경제는 성장 둔화 속 물가는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취임 첫해 6% 안팎이었던 물가상승률은 임기 후반 13%대를 넘어섰고 실업률은 무려 7%대를 기록했다. 통화 재정정책은 물론이고 에너지 계획을 비롯한 경제정책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곳곳에선 '미국의 위기'라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여기에 ‘외교 실패’로 기록된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은 지지율 추락의 직격탄이 됐다. 당시 미국 대사관 직원을 비롯해 50여명이 인질로 붙잡혔는데, 이른바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으로 불리는 특수부대 구출 작전마저 실패로 끝난 탓이다. 1년 이상 인질이 억류된 상태에서 치러진 미 대선은 카터 전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그는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유약한 리더십’의 놀림거리로 치부됐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조지아로 귀향한 이후부터 진정한 빛을 발했다. 사회 구성원으로 돌아간 그는 매주 일요일엔 교회 주일교사로 봉사했고, 세계적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해비타트’ 운동을 주도하며 직접 망치를 들었다. 카터 센터를 설립해 글로벌 평화, 인권 신장, 질병 및 빈곤 퇴치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에티오피아 등 분쟁 지역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명함을 앞세워 평화 중재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이벤트성에 그치지 않고 90대 고령까지 수십년간 이어졌다.

카터 전 대통령의 국장이 치러진 지난주 현지 언론들은 그가 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영향력 있는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는 평가를 쏟아냈다. 단순히 고인에 대한 추모 차원에서 포장된 글이 아니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국장에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을 두고 "백악관을 떠난 후 40년간 인도주의 활동을 이어간 것에 대한 경의"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또 다른 기사에서도 "경멸에서 존경으로, 카터의 유산은 대통령 임기 후 진화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 매체 복스 역시 "지미 카터의 유산: 실망스러운 대통령직의 임기, 놀라운 퇴임 이후의 행보"라는 기사에서 퇴임 후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진 그의 헌신적인 평화 및 봉사 활동을 주목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행보는 오늘날 대통령의 리더십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 비록 그의 임기 4년은 경제 위기 등으로 혹독한 평가를 받았을지 몰라도 퇴임 후 인생 2막은 ‘진정한 리더십은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 박사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이 자신의 생애를 통해 증명한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인권·정직과 같은 도덕적 가치, 사회적 기여, 관용과 베풂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는 1977년 취임 연설에서 그가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 리더가 지켜야 할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원칙’이기도 하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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