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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새떼와 콘크리트... 안전과 비용 사이 타협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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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9일 탑승자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으로 콘크리트로 된 로컬라이저 지지대와 조류 충돌이 지목되고 있다. 이 두 문제 모두 안전 문제를 비용과 타협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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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국제공항에 설치된 둔덕에 제주항공 여객기가 충돌해 폭발하며 ‘콘크리트 둔덕’이 사고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이 일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피해 키운 ‘콘크리트 둔덕’
로컬라이저 또는 방위각 시설은 기상 등의 이유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항공기가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방향을 알려주는 안테나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단으로부터 264m 떨어진 지점에, 2m 높이의 콘크리트 둔덕을 쌓아 설치됐다. 콘크리트 기둥은 흙더미로 덮었고, 둔덕에 콘크리트 상판을 추가해 로컬라이저를 세웠다. 둔덕을 쌓은 이유는 무안공항의 남쪽이 지대가 낮기 때문에 수평을 맞추기 위해서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3일 브리핑에서 콘크리트 주변을 흙으로 덮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면이) 평면이라면 흙을 쌓을 이유가 없고 밑에 구조물을 둘 필요가 없는데 활주로 높이를 위해 지지대 역할이 들어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브리핑에서 박문수 국토부 공항정책과장은 “(활주로를 만들 때) 완전하게 수평을 맞추는 게 이상적이지만 그만큼 비용이 증가하지 않냐”며 “경제성과 사업성, 안정성의 조합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해외 전문가, “잘 부러지는 구조물은 충돌 시 항공기가 받을 충격과 피해 줄여줘”
국내외 전문가들은 로컬라이저 구조물을 잘 부러지는 소재로 만들 경우, 항공기가 구조물과 충돌하는 비상 상황 발생 시 항공기가 입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돈이 들어가서 전체를 다 흙으로 메우지 못 한다면, 콘크리트 언덕에 한 50m 정도만이라도 흙으로 메워서 경사를 부드럽게 만들어 놓았다면 이런 문제는 안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로컬라이저 등 항행안전시설을 설계·시공하는 미국 업체 ‘DEG 엔터프라이즈’의 프로젝트 매니저 아론 기어리 씨는 뉴스타파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흙더미와 콘크리트로된 구조물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콘크리트가 들어간 둔덕이) 단단하기 때문에 바람 등으로 안테나가 움직이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다른 설계 요소는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철강 구조물 위에 세워진 로컬라이저 디자인 예시와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를 비교하며 “잘 부러지는 구조물의 경우 항공기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하고 부러져 항공기가 받을 충격과 피해를 줄이도록 설계가 되는 특징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어리 씨는 로컬라이저 구조물이 태풍 등을 견딜 정도로는 튼튼해야 한다고 말하며, DEG 엔터프라이즈는 구조물을 올릴 때 흙더미, 목재, 스틸 등의 소재를 써 만들었다고 말했다.

국토부 ‘규정 어기지 않았다’는 해명 반복
국토부 예규인 항공장애물 관리세부지침(제23조 3항)은 ‘공항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국토부는 해당 규정에 대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 내에 위치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라며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지지대는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기 때문에 재료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또 콘크리트 구조물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해명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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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12월 31일 보도자료를 내고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되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는 무안공항 외에도 ‘콘크리트 둔덕’이 있는 공항이 여럿 있다. 여수공항, 광주공항, 포항경주공항 등이다. 지난 7일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논란이 되고 있는 콘크리트 둔덕과 관련해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규정 준수 여부를 떠나 안전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신속히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버드스트라이크’ 당시 무안공항 조류 퇴치 야외 인력 1명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을 조사 중인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7일 열린 브리핑에서 “엔진에서 깃털이 발견됐다”며 “버드스트라이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관제사의 경고 등을 토대로 조류 충돌이 사고의 최초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는데, 조류 충돌 발생 사실을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다.

12월 29일 오전 8시 57분께 무안공항 관제탑이 사고기에 조류 충돌을 경고했고, 2분 뒤인 59분 사고기 기장이 긴급 조난신호인 ‘메이데이’를 요청했다. 이 시각 무안공항 야외에서 조류 충돌 예방 업무를 하던 인력은 1명이었다. 무안공항의 조류 충돌 예방 활동 인력은 총 4명인데, 사고 당일 야외 근무자는 1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2022년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무안공항 주변에는 철새도래지가 6곳이 있다. 조류 충돌의 위험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유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열흘 전 무안공항 내 사무실에서 열린 조류충돌예방위원회에서도 조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하는 내용의 내부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이 당시 무안공항에서 해당 업무를 맡은 남부공항서비스는 “공항 내·외부 전체를 이동하기에 인력과 차량이 부족하고, 해변 등 원거리까지 (조류 퇴치를 위한) 확성기 소리가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남부공항서비스는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로서 무안국제공항을 포함한 남부권 10개 공항의 운영시설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을 위해 조류 탐지 레이더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조류 탐지 레이더가 있으면 6,000~8,000m까지는 탐지가 되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미리 복행을 하거나 회피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현재는 조류 탐지 레이더나 열화상 탐지 장치가 구비되지 않은 실상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레이더 가격이 30억 원가량 하는 것으로 아는데 안전을 위해 그 정도 금액은 충분히 지불할 필요가 있다”라고도 말했다.

뉴스타파 신동윤 shintong@newstapa.org

뉴스타파 이명주 sil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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