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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尹 체포 저지" 흰색 헬멧 쓰고 자처한 '백골단'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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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탄압하던 경찰 사복체포조
강경대 치사 사건, 시신 탈취 사건 중심
"강력한 수단" 필요하다며 백골단 차용
한국일보

노태우 정권 당시 백골단이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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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했던 시절 시민들을 때려잡던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폭력집단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를 저지하겠다"고 나선 '반공청년단'의 기자회견을 본 한 누리꾼의 반응이다. 흰색 헬멧을 쓰고 출범 회견을 연 이들은 "반공청년단 예하 조직으로 '백골단'을 두고, 자경단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들 중 하나라도 진짜 백골단들과 대치를 해보고, 그 시절의 공포를 몸으로 느껴봤다면 절대 장난으로도 저런 짓 못 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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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반공청년단 단장과 단원들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을 한 뒤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하얀 헬멧을 쓰고 관저 사수 시위를 벌인 이들은 백골단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조직이라며 윤 대통령을 지키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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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진압하던 경찰 사복체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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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당시 백골단이 길을 지나는 시민들을 붙잡고 가방을 검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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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은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악명 높았던 경찰 사복체포조를 일컫는다. 이들은 시위 현장에 주로 하얀색 헬멧을 쓰고 청바지와 청재킷, 짧은 곤봉, 소형 방패 차림으로 나타났다. 백골단은 집회와 시위, 농성 현장에서 곤봉을 휘두르며 무자비하게 주동자를 체포하거나 시위대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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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방패를 든 백골단이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을 제압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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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 강경대 사망 사건과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시신 탈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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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생들이 1991년 4월 26일 오후 진압경찰에게 폭행당해 쓰러진 강경대를 학교 내 보건소로 옮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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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권 당시인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생 강경대가 등록금 인하, 학원 자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경대를 사망케 한 이들은 서울시경 기동대 소속 전경 5명이었다. 이들은 쇠파이프에 맞아 쓰러진 강경대를 길거리에 버리고 철수, 사망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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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를 때려 숨지게 한 경찰들이 1991년 4월 26일 밤 구속돼 영등포구치소로 압송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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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의 죽음은 1987년 6월 항쟁을 정점으로 치닫게 한 이한열의 죽음과 비견될 정도로 대학가와 재야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5월까지 대학생과 시민들의 분신 자살이 끊이지 않는 '분신 정국'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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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대학생 8,000여 명이 1991년 4월 27일 연세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열린 연합규탄대회에서 강경대 폭행치사사건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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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은 영안실 벽에 구멍을 뚫고 시신을 탈취하는 폭력적이고 패륜적인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강경대의 죽음으로 비롯된 전국의 동시다발적인 집회가 이어지던 1991년 5월 대우조선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던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의문사했다. 사망 당시 젊은 남성들이 박 위원장을 방문한 점 등을 들어 안기부에 의해 살해됐다는 의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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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사망한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전국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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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을 앞세운 경찰은 부검을 하기도 전에 박 위원장이 안치된 안양병원 영안실로 쳐들어가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충돌했다. 영안실 입구에 최루탄을 난사하며 진입한 백골단은 아예 콘크리트벽을 뚫고 영안실에 난입해 시신을 강제 탈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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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단이 차량 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민을 붙잡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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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수단" 필요해 '백골단' 차용했다는 반공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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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 출범 기자회견을 마친 단원들이 헬멧을 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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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청년단은 이날 회견에서 "악명 높은 백골단이라는 명칭을 굳이 붙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은 입법 폭거, 힘센 사람이 이기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됐기 때문에, 대민을 지킬 수 있는 시민조직이나 정치 세력은 반드시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야만 지금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며 "그렇기에 강한 이미지를 가진 백골단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자료조사= 성민호 대리 minhos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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