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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남태령 연대자’들이 바라는 것…‘구조적 윤석열’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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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을 먹고 자란 ‘윤석열들’ 퇴진 위해 남태령이 빚어낸 무지개 떡… 광장과 공화국은 함께 진화하라

한겨레21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가 2024년 12월22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남태령역 부근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경찰에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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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은 내란 사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어야 한다. 더 나은 한국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성찰과 방향, 밑그림, 과제 등에 대해 진보적 필자들의 연속 기고를 싣는다_편집자



광장이 진화하고 있다. 그 주역은 2030 여성들이다. 윤석열의 12·3 내란 이후 수습의 시간이 이어지며 윤석열과 내란 가담자들, 그리고 국민의힘은 온갖 방법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다수 시민은 일관되게 헌법 절차에 따른 탄핵과 내란범에 대한 신속한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여론조사의 흔들리지 않는 숫자와 광장의 응원봉 물결은 이러한 시민적 의지의 분명한 표현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광장의 상징이 촛불이었다면 2024년 윤석열 탄핵 광장의 상징은 색색의 응원봉이고 이 응원봉의 주인은 2030 여성들이다. 계엄 해제 직후 국회 앞 탄핵 가결 촉구 집회에 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쏟아져나온 2030 여성들은 그로부터 한 달가량 지난 지금까지 광화문과 남태령, 안국역과 혜화역을 바삐 오가며 ‘윤석열 탄핵’ 단일 의제를 넘어 오랫동안 지연돼온 각종 사회개혁을 촉구하는 현장으로 시시각각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남태령 대첩은 무지개 대첩

특히 2024년 12월21일부터 1박2일 동안 이뤄진 동짓날 밤의 기적 같은 ‘남태령 대첩’은 광장 연대의 외연과 내포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는 계기였다. 광화문 집회에 합류하려 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시위대가 서울 경찰에 막혀 남태령에 고립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속속 집결한 다양한 정체성의 연대자들은 혹한의 현장에서 서로의 이야기와 노래를 나누며 밤을 지새우고 기어코 함께 승리를 이뤄냈다. 이후 남태령의 연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안국역 다이인(die-in) 시위(죽은 듯 누워 있는 시위 방식)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해고 노동자들의 생수 연대와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 모금으로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가 벌어지는 속도와 양상이 너무나 빠르고 전방위적이었기에 그저 타임라인을 계속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이 사건의 한복판에 함께 있던 이들과 서로의 경험에 대해 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서울 마포 정의당과 마포 녹색당이 12월26일 저녁 긴급히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라는 제목의 공동 시국 집담회를 개최한 이유다.



홍보 하루 만에 300여 명의 신청자가 쇄도한 이번 집담회에서는 ‘남태령 대첩’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엑스(X·옛 트위터) 유저 ‘향연’과 현장에서 용기 있는 발언으로 많은 이를 울린 이주민 2세 20대 여성 발언자를 포함해 노동, 주거, 여성, 평화, 지역 등 여러 의제에 관해 활동해온 2030 여성 활동가들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집회 참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마무리된 집담회의 결론은 분명했다. ‘남태령 대첩’은 우리 안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연대의 힘이 만들어낸 놀라운 승리이자 달라진 세계를 꿈꾸게 하는 희망의 물리적 경험이었다. 발언자들은 이구동성 강조했다. ‘윤석열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더 많은 변화를 원한다.’ 현장에서의 인상적인 몇몇 발언을 소개한다.



집담회에서 쏟아진 ‘차이와 연대’의 말

“윤석열 때문에 화가 나서 우리 광장에 왔잖아요. 근데 윤석열 말고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 우리가 광장에 나가는 게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그거 저희 8년 전에 겪어봤잖아요.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어떤 삶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내 삶을 옥죄는 어떤 형태의 불평등과 차별과 혐오들 이런 걸 겪은 이상 저는 이번 탄핵만큼은 절대 윤석열 하나 몰아낸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저는 지난 세 달간 무력하게 전세 대출 이자만 갚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이 시국이 선언되고 남태령에 다녀와서야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있지 말고 싸워야겠다. 그리고 같이 싸울 사람을 찾아야겠다. (…) 저희 엄마는 자식이 전세사기 피해 청년인데도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값이 오르기를 바랍니다. 제가 ‘정신 차리라’며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들은 것은 제가 사랑하는 모교, 여대 커뮤니티 안에서였습니다. 저는 비건입니다. 제 주변에는 항상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으라 말하는 무례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다름을 알아차리고도 연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같고 또 다르기에 서로에게서 힘을 더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남태령 연대자,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



“저도 이번 발언 때 처음으로 저와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났어요. 어쩌면 여러분 근처에 있을지도 몰라요. 우린 그만큼 평범하니까요. 저희를 틀 안에서 꺼내는 건 제 발언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 이상부터는 저만 노력해서 될 것이 아니에요. 나도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내 모국이 어디인지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집단에서 오는 배척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경험이에요. 그 경험은 어느 한 국가를 원망하는 것으로 변질될 수도 있고, 부모를 원망하는 게 될 수도 있으며, 이렇게 태어난 나를 원망하는 것이 될 수도 있어요. 더 큰 용기를 줄 수 있는 건 이러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는 제가 아닌 여러분의 더 큰 응원과 연대예요.”(이주노동자 2세 청년 여성, 엑스 닉네임 ‘위아더해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윤석열 퇴진 너무나 시켜야 되지만, 윤석열은 직무정지가 됐는데 또 다른 윤석열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잖아요. 그 다른 윤석열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난한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좀더 일상의 광장을 열어서 일상적인 투쟁을 함께 해나가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청주 지역 페미니스트 누리 활동가)



“8년 전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나서고 4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었는데 정권이 바뀐 것 말고 우리 삶에 크게 바뀐 것이 없고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 남태령에 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모인 걸 보면서 다시 한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정권 교체 그 이상을 넘어서 차별금지법도 통과되고 동물권 문제가 더 많이 공론화되고 소수 정당이 원내에 더 많이 진출하고 꼴 보기 싫은 국민의 짐인지 국민의 똥인지 하는 걔네들이 없어지고 하는 모습을 꼭 좀 보고 싶어요.”(집담회 참가자)



한겨레21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트랙터들이 2024년 12월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 도착해 시민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ji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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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이미 ‘계엄’이었던 존재들

나는 둘째 날인 12월22일 오전 남태령에 합류했다. 익명의 사람들이 ‘남태령역 2번 출구’로 끊임없이 보내오는 물품들을 분류하고 나누어주며 수많은 무지개 깃발이 맑은 하늘 아래 휘날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계엄 당일, 국회 앞으로 가장 먼저 달려갔던 사람들 속에 성소수자들이 당연히 함께했던 것처럼. 무대 위에 올라 발언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저의 정체성은 ○○입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남성도 여성도 게이도 레즈비언도 트랜스젠더도 장애인도 청소년도 이주민도 모두가 함께 ‘윤석열은 방 빼고 경찰은 차 빼라’는 구호를 외쳤다. 모두가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함께했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했다. 그렇게 트랙터는 남태령을 넘어 대통령 관저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다.



그다음 주인 12월28일 열린 광화문 집회에서 전농은 ‘남태령 대첩’에 함께해준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연대의 무지개떡’ 1만 개를 나누었다. 이 의미 있는 떡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게도 닿았다. 떡을 먹은 박 원내대표가 엑스에 “떡 맛있어요. 웬 떡이니? 했어요”라고 글을 올리자 수많은 사람은 그 무지개의 의미를 헤아려 이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글을 남겼다. 박 원내대표는 아직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불과 2개월 전 자신을 방문한 예장통합 전국장로회연합회 앞에서 “민주당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단 한 번도 모은 적이 없다”고 발언했다. 그는 자신에게 던져진 물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대답을 나중으로 미루고 있을 뿐이다.



무도한 정권이 벌인 초유의 12·3 내란사태를 겪으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광장은 역설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회 앞에서 계엄을 가장 먼저 몸으로 막은 것은 권리의 박탈이라는 형태로 이미 일상적 계엄을 살고 있던 소수자와 약자들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약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약자의 권리가 차별과 혐오로 짓밟히고 얼룩질 때,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한다.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위기가 계엄이라는 충격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이전부터 이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붕괴를 고통스럽게 경고하고 있었다.



또다시 ‘나중’을 입에 올리지 말라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사회에 곰팡이처럼 피어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먹고 자랐다. 윤석열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구조적 윤석열’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한민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회가 무려 17년을 미뤄온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구조적 윤석열’을 퇴진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사실 이러한 요구는 낯설지 않다. 8년 전, 박근혜 탄핵을 외쳤던 촛불 광장에도 이 요구는 울려퍼졌다. 다만 광장 이후의 정치가 이 요구에 ‘나중에’로 응답했을 뿐이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윤석열 퇴진이 지금 당장이라면 광장의 무지개에 화답하는 것도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만일 정치가 여전히 변화를 거부한다면 이번에는 광장이 끝까지 정치를 바꿔내야 한다. 그것만이 광장의 진화가 공화국의 진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이고 응원봉 광장이 촛불 광장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망원정x 대표



한겨레21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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