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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단호한 포즈, 모호한 전략 트럼프 2기를 주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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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2025년 새해 메시지 분석…미국 향해 일단 문 열어놓고 남쪽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 엿보여

한겨레2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조선노동당 총비서(앞줄 왼쪽)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2024년 12월23~27일)에서 의사 결정을 위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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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앞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대한민국과 ‘헤어질 결심’을 밝혔다. 남과 북은 더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가 아니게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2023년 12월26~30일)에서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말했다. ‘트럼프 2.0’시대가 도래했다. 2025년 벽두에 북은 바깥세상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발신했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1년 12월 집권 이후 일관되게 추진해온 것은 북의 ‘정상국가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추진했던, 군을 앞세운 이른바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당이 영도하는 ‘선당정치’를 복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대표적인 사례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김 위원장 집권 이전까지 비정기적으로 열렸던 당대회를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 때부터 중국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5년 주기로 정례화했다. 둘째, 해마다 1월1일 대내외 정책 방향을 제시했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2020년부터 연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보고로 대체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초점은 대외·대남 관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12월23일부터 27일까지 혁명의 최고참모부인 당 중앙위원회 본부에서 진행되였다.”



조선중앙통신은 2024년 12월29일 ‘당과 공화국의 장성 발전사에서 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게 될 2025년’이란 부제가 붙은 공식 보도문에서 이렇게 전했다. 조직문제(인사)를 포함한 회의 의제는 7가지였지만, 관심의 초점은 대외·대남 관계로 모였다. 김 위원장은 “자주권 세력의 장성과 약진 대비 패권 세력의 약화와 쇠퇴”로 작금의 국제정세를 규정했다. 보도문에 등장하는 대외정책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한겨레21

2024년 12월3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고사령관’ 추대 13주년을 기념해 평양 시내에서 열린 경축 무도회에서 참가자들이 한복 차림으로 춤추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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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김 위원장은 “전망적인 국익과 안전 담보를 위한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주문했다. 1월20일(현지시각) 취임식과 함께 시작되는 도널드 트럼프 집권 2기를 ‘최강경’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정작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전망적인 국익’은 북-미 협상으로 얻어낼 수 있는 내용일 터다. 북쪽 ‘안전 담보’의 중심은 핵과 미사일이다. 협상을 통해 굳건한 ‘안전 담보’가 마련되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일까? 보도문의 표현은 극히 모호하다.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 방향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전까지 북쪽의 셈법을 속단할 수 없는 이유다.



미-러가 풀려야 북-미도 돌파구

둘째, 김 위원장은 2024년에 “국익 증대와 국위 선양의 견지에서 중대한 전략적 의의를 가지는 성과를 이룩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으며 준군사동맹으로 나아간 북-러 조약(2024년 6월19일)과 북한군 러시아 파병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러 관계는 북-미, 미-러 관계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3개의 양자관계를 하나로 묶은 축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한 북-러의 돈독한 관계는 이어질 것이고, 미-러 관계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미-러 관계가 풀리지 않고는 북-미 관계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다.



셋째, 김 위원장은 “국가의 존엄과 국익을 존중하는 친선적이고 우호적인 나라들과의 관계 발전을 적극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북이 친선·우호적으로 느낄 국가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몰린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개발도상국)다. ‘글로벌 사우스의 단결’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 등 소다자 기구를 통해 적극 추진하는 바다. 급격한 대러 관계 강화로 삐걱대는 대중 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남쪽을 겨냥한 내용은 이례적으로 적다. 보도문에는 “미일한 동맹이 침략적인 핵 군사 쁠럭(블럭)으로 팽창” “대한민국이 미국의 철저한 반공기지로 전락한 현실”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군사적 도발 책동에 대처” 등 직간접적으로 남쪽이 포함된 문장이 단 세 차례 등장한다. 북의 이런 태도는 12·3 내란사태 이후 남쪽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한국은 지난 10월3일과 9일에 이어 10일에도 심야시간을 노려 무인기를 평양시 중구역 상공에 침범시켜 수많은 반공화국 정치모략 선동삐라를 살포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했다. 군사적 공격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무인기를 수도 상공에까지 침입시킨 사건은 절대로 묵과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중대도발이다.” 북한 외무성은 2024년 10월11일 낸 ‘중대성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12·3 내란사태 이후 밝혀진 아찔한 ‘외환 유도’ 정황이다. 그런데 그 한복판이던 10월7일 김 위원장은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창립 60돌 기념식에서 “우리는 솔직히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며, ‘현명한 상황 관리’를 강조했다. 당시 북이 대응에 나섰다면 ‘내란의 밤’이 빨라졌을 수도 있었을 터다. ‘헤어질 결심’이 불러온 의도치 않은 효과일까?



‘외환 유도’ 무력화한 ‘헤어질 결심’?

“북한군 러시아 파병은 남쪽의 무인기 침투 훨씬 이전에 결정됐을 거다. 따지고 보면 대북전단에 대해 오물풍선으로 대응한 것도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쪽에 대한 선의가 아니라 북쪽도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렇게 짚었다. 그는 “2025년은 노동당 창당 80주년이자 8차 당대회(2021년 1월5~12일)에서 선출된 8기 중앙위원회의 임기 마지막 해다. 2026년 9차 당대회를 앞두고, 8차 당대회 때 김 위원장이 강조한 ‘인민대중 제일주의’의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관건적 시기이기도 하다. 보도문을 보면, 미국을 향해선 일단 문을 열어놓고 남쪽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로 읽힌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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