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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 (토)

미국 피하려던 권도형, 몬테네그로행이 부른 최악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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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23일 검거 1년 9개월여만에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

거물급 변호사 앞세워 법정공방 벌였지만 미국행 못 피해

연합뉴스

권도형
권도형씨가 3월 23일(현지시간)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에 있는 경찰청에서 조사받은 뒤 무장 경찰대에 이끌려 경찰청 밖으로 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가 인구 약 62만명의 소국 몬테네그로에서 붙잡힌 것은 지난해 3월 23일이었다.

전 세계 수십만명의 투자자들에게 50조원이 넘는 피해를 주고 여러 나라를 돌며 도피하던 그가 몬테네그로에서 등장하자 '뒷배'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몬테네그로 현 총리인 밀로코 스파이치가 권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의 초기 개인 투자자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권씨가 인터폴 적색 수배를 받던 2022년, 둘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따로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증폭됐다.

그가 지난해 3월 23일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국제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이용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출국하려다 경찰에 체포되자마자 한국과 미국은 거의 동시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한국 법무부는 체포 이튿날인 3월 24일 영문 이메일로, 이틀뒤엔 몬테네그로어 이메일로 권씨에 대해 인도를 청구했다.

몬테네그로에 공관이 없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사관이 있었지만 사흘 늦은 지난해 3월 27일 몬테네그로 법무부에 공문을 보냈다. 그마저도 공문에는 권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있었을 뿐 공식적인 범죄인 인도 요청은 없었다.

권씨의 위조 여권 사건에 대한 재판이 끝난 뒤 범죄인 인도 재판을 개시한 고등법원은 올해 2월 21일 미국행을 결정했다. 고등법원은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 공문이 한국보다 하루 더 일찍 도착했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권씨 측은 즉각 항소했다. 항소법원은 권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과 달리 전자문서도 송달의 효력과 문서의 효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등법원은 기존의 결정을 뒤집고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고, 항소법원이 3월 20일 고등법원의 결정을 확정하면서 권씨의 뜻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대검찰청의 이의 제기로 제동이 걸렸다.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4월 5일 대검찰청의 적법성 판단 요청을 받아들여 하급심의 한국 송환 결정을 무효화하고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에서 "범죄인 인도를 놓고 두 국가가 경합하는 상황에서 법원의 의무는 피고인에 대한 인도 요건이 충족되는지 판단하는 것"이라며 "범죄인 인도 허가나 우선순위 결정은 법원이 아닌, 관할 장관이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고등법원이 범죄인 인도국을 결정한 것은 법원의 권한을 넘어선 것으로 적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고등법원은 이에 따라 4월 8일 권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위한 법적 요건이 충족됐다며 범죄인 인도를 승인한 뒤 범죄인 인도국 결정 권한은 법무부 장관에게 넘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항소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항소법원은 법원이 범죄인 인도국을 직접 결정해야 하는데 하급심인 고등법원이 왜 관할권이 없다고 보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다시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과 항소법원의 정면충돌 속에 고등법원이 다시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하자 대법원은 9월 19일 이를 무효로 한 뒤 이번에는 사건 자체를 법무부에 이관해 법무장관이 권씨를 한국과 미국 중 어느 곳으로 보낼지 직접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자 권씨 측은 이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권씨의 현지 변호인단은 범죄인 인도 절차가 부당하게 진행됐으며 이는 권씨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2개월이 넘는 심리 끝에 지난 24일 권씨 측의 헌법소원을 기각하고 범죄인 인도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권이 법무장관에게 있음을 명확히 했다.

보얀 보조비치 법무장관은 27일 권씨를 미국으로 인도한다는 명령에 서명했다. 금요일 오후 늦게 발표된 이 발표에 권씨 측은 반발하며 대응책을 강구했지만 남아 있는 법적 수단이 많지 않았다.

몬테네그로 사법당국은 2024년의 마지막 날 권씨의 신병을 미국에 인계해 기나긴 법정 공방에 마침표를 찍었다.

권씨 측은 거물급 변호사 고란 로디치의 법적 조력을 받으며 미국행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미국은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여서 100년 이상 징역형이 선고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한국은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약 40여년으로 미국보다 낮기 때문이다.

반대로 몬테네그로 정부가 국익 관점에서 권씨를 어떻게든 미국으로 보내기 위해 사법부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권씨의 범죄인 인도 재판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몬테네그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몬테네그로 입장에선 대미 관계를 더 발전시키고 협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안드레이 밀로비치 전 법무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권씨 인도국과 관련해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측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권씨 입장에선 몬테네그로 행이 최악의 결과만을 가져왔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미국에서 재판받게 됐고 기나긴 법정 공방 속에 막대한 변호사 비용만 치르고 1년 9개월이라는 긴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됐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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