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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어이없는 둔덕…비상착륙 대비 훈련은 제대로 했을까[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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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

편집자 주
노컷뉴스의 '기자수첩'은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노컷뉴스

무안(전남)=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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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는 평소 항공기에게만 허용되는 영역이지만, 공군장교 시절 가끔 그 활주로 위에 직접 올라서야 할 때가 있었다. 바로 항공기 비상착륙 대비 훈련이 이뤄지는 시기다. 길게 뻗은 활주로 끝단, 비상착륙 하는 전투기를 잡아주는 어레스팅 기어를 비롯해 도열한 소방차들과 긴급 대응 장비들을 보고 있으면, 비록 실제 상황은 아니었지만 가상의 항공기가 활주로에 동체 착륙하는 상황이 머릿속에 아찔하게 그려졌다.

제주항공 참사 소식을 처음에 전해 듣고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외벽과의 충돌과 폭발이었다. 군공항이나 민간공항이나 공항 외벽은 보통 이중 철조망으로 돼 있거나, 시멘트 블록벽으로 돼 있다. 시멘트 블록은 해머로 내려쳐도 깨지는 재질인데 항공기가 충돌해서 폭발했다?

역시나 예상 밖의 견고한 구조물이 활주로 끝단 251m 지점에 설치가 돼 있었다. '로컬라이저'라는 방위각 시설을 콘크리트 구조물에 흙을 덮어 만든 둔덕 위에 세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았고, 엔진 두 개가 동시에 꺼졌을 가능성도 엿보이는, 아직 풀리지 않은 여러 의문 속에서도 사고 항공기는 활주로에 정확한 각도와 방향으로 착륙해 미끄러졌다. 그러나 그 '정확한 방향' 끝에는 어이없게도 견고한 콘크리트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충격흡수장치(EMAS)는 고사하고 그냥 공항 외벽을 뚫고 지나갈 수만이라도 있었다면, 그 뒤편 풀밭 공터까지 미끄러져 간 뒤 멈춰서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곱씹어보게 하는 대목이다.

무안공항은 2007년에 개항했다. 17년의 세월 동안 항공기 비상착륙을 가정한 관제 및 대응 훈련은 법규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특히나 항공기가 활주로 너머를 달리는 '오버런' 대응 훈련을 하다보면 활주로 끝에 저런 구조물이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한데, 그것이 눈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을까. 아니면 한 두 사람의 문제제기로 끝나고 말았을까. 이 또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해 보이는 지점이다.

지난해 10월 무안군에서 시행한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에서는 항공기 비상착륙 상황을 가정한 대응 훈련이 실시되기는 했다. 그러나 랜딩기어 3개 중 1개가 전개되지 못해 항공기가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방향을 틀어 건물 외벽과 충돌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항공기는 활주로가 아닌 주기장에 세워져 있었다. 활주로의 구조적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훈련은 아니었다.

지난해 무안국제공항 이용객은 24만6천명이다. 1년 365일로 나누면 하루 이용객은 674명에 불과했다. 무안공항은 3년 째 국제선 운항이 끊겼다가 이달 초부터 동남아와 중국, 일본 등지로 제주에어와 진에어의 정기 국제선이 운항하는 '국제공항'의 구색을 막 갖추기 시작한 참이었다.

그러나 인근에 철새 서식지가 있음에도 조류퇴치반(BAT)은 4명 밖에 없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제주공항에는 20명, 김해공항에는 16명이 편성된 것으로 파악됐는데, 그간 항공기의 활주로 이용률이 낮았다가 갑자기 운항 스케줄이 늘어나는 시점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문도 든다.

특히나 공항 운영을 책임진 한국공항공사의 사장이 지난 4월 물러난 뒤 공석으로 8개월째 대행 체제로만 운영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선 운항이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을 앞두고 무안공항 측이 운영 준비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점도, 아쉬운 점도 너무나 많은 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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