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은 2015년부터 ‘10대 안전수칙 지키기’(safety core rule·SCR) 운동을 시행하다가 2023년 8월부터 SCR을 위반하는 노동자를 인사위에 회부해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특히 노동자가 다쳐 쉬어야 하는 안전사고의 경우, 다친 노동자는 인사위에 당연 회부되도록 되어 있어, 산재노동자뿐 아니라 현장관리자가 징계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산재노동자는 다친 것도 억울한데 산재 치료 후 현장 복귀 시 징계위에 회부되며, 징계 대기 상태에서 산재 치료를 받게 된다.
하청노동자에게 SCR 위반카드 발급은 더 가혹하다. 1번 적발 시 당일 퇴출이고, 3번 적발일 경우 영구퇴출이다. 10대 안전수칙에서 악명 높은 조항은 ‘안전보호구 미착용’과 ‘작업절차 미준수’이다. 2019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SCR 위반 건수는 총 1475건. 이 중 보호구 미착용과 작업절차 미준수로 적발된 건수는 1075건으로 전체의 71.7%에 이른다. 특히 작업절차 미준수는 문제적이다. 작업의 절차와 형식은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촘촘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작업절차를 지킬 수 있는 여유인력과 설비개선이 함께 이뤄지고 있는지, 작업속도와 노동강도가 ‘안전한 생산’에 적합하도록 조정되었는지 여부다.
현장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위험은 손쉽게 외주화되거나 숨겨진다. SCR 위반이 두려워 산재는 종종 은폐되며, 안전매뉴얼 강화로 인한 노동강도 증가는 노동자들이 감수하거나 외주화로 대체된다.
지난 12월10일 정년을 1년 앞둔 노동자가 가스관 점검 중 고농도 일산화탄소에 급성 중독되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제철 노조는 이 사망사고를 계기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SCR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실에서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작업절차는 평소에 암묵적으로 묵인된다. ‘솔선수범’은 매뉴얼과 상관없이 ‘일을 쳐내는’ 노동자에게 붙여지지만, 살아 있을 때 한정이다. 그러다 죽게 되면 ‘가지 말라는 곳에서, 하지 말라는 작업을 하다가’ 죽은 안전 위반자가 된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현대제철 사망노동자만 52명이다. 그중 40명이 비정규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27일 이후에만 5명이 사망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책임을 직접적으로 묻지만, 현대제철은 이를 현장노동자의 책임으로 절차화하고 심지어 징계까지 연결시키고 있다.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안전 통치술인 “개인 책임화”의 가장 나쁜 판본이다. 현대제철 노동자들에게 안전은 무엇일까? 그것은 숨막히는 통제에 다름 아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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