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2030대가 앞장···‘선결제 응원’도 물밀 듯
영하권 밤샘 시위에 ‘난방버스’까지 등장
전국농민회총연맹이 트랙터를 몰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다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가로 막혀 밤새 대치한 다음날인 22일 시민들이 모여 집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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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빼라! 차 빼라!”
‘탄핵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22일 오전부터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앞 경찰 차벽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이른 새벽부터 모인 이들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들을 막아선 경찰 병력에게 “시민을 막을 게 아니라 윤석열을 잡아야 한다”고 외쳤다. 탄핵안 가결 후에도 ‘계엄은 정당한 조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내란 수사에는 불응·무시로 일관한 윤 대통령을 향해 누적돼온 시민들의 분노가 광화문에서 남태령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는 전날 오전 8시부터 서울에 진입하려다 남태령 고개 인근에서 경찰에 막힌 뒤 약 32시간 밤샘 대치를 벌였다. 경찰은 교통 불편을 이유로 전농의 상경을 막았다. 이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알려지자 광화문 등에서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고 있던 시민 다수가 남태령 현장으로 합류했다.
이번에도 2030여성들이 가장 앞에 섰다. 이들의 발길은 22일 새벽부터 이어졌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기록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위행렬은 늘어났다. 고등학생 허윤서씨(18)는 “‘경찰이 농민들을 못 오게 하려고 폭력진압까지 한다’는 SNS 글을 보고 화가 나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웹툰작가인 김예담씨(24)는 “경찰이 트랙터를 막고 농민을 고립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돼 길을 터 드리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시위에 공감과 연대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기 안양시에서 온 회사원 엄승윤씨(30)는 “명박산성(이명박 정권 광우병 집회 당시 경찰이 세운 차벽)과 박근혜 때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것이 자꾸 생각이 났다”며 “밤새 계속 방송으로 보다가 안 나오면 너무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다 쌀밥으로, 농민들이 만든 야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기성세대로서 2030대에 부끄러워 참여했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김태임씨(52)는 “광화문 시위 뒤에 집에 갔다가 유튜브를 보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고 해서 주섬주섬 다시 나왔다”며 “경찰이 막길래 ‘딸 데리러 왔다’고 하고 왔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사 박대령씨(47)는 남태령역 역사에서 기타 연주를 하면서 “시끄러운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오늘은 여기서 노래로 위로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
상담·임상심리전문가연대 소속 박대령씨(47)가 22일 오후 1시쯤 전농 집회에 연대하기 위해 남태령역 역사 안에서 기타를 치고 있다. 오동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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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현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의 후원도 뜨거웠다. 남태령역 출구마다 후원품이 쌓였고 이를 정리하고 나누는 자원봉사자들의 행렬도 이어졌다. 국회 앞과 광화문 일대 탄핵 촉구 집회에서 봤던 ‘선결제’ 응원이 이번에는 ‘배달 선결제’로 계속 이어졌다. 자원봉사자 김봉헌씨(55)는 “핫팩부터 여성용품, 빵, 커피, 도넛, 떡국, 어묵 등 셀 수 없이 계속 후원이 들어오고 있어서 정신없이 나누고 있다”며 “이 현장이 뿌듯하다. 동료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민 안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교통 통제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SNS에서의 응원도 계속됐다. 하루종일 ‘남태령’이라는 단어가 SNS 인기검색어에 올랐고, 밤샘 집회를 한 시민들에게 방한용품·간식·의약품 등 후원하겠다는 글도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아예 ‘난방용 버스’를 대절해 현장에 보내기도 했다. 그는 “나이드신 분들, 아프신 분들은 잠시 히터 대용으로 사용해달라”고 말했다.
안방에서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경찰차 빼라” 등 댓글로 응원했다. 전농의 유튜브 채널 현장 생중계 영상에는 한때 1만7000여명의 시청자가 동시에 몰렸다.
전농 측은 경찰과 교섭 끝에 이날 오후 4시44분 트랙터 10대만 이끌고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이동했다. 4시25분쯤 경찰 기동대 차량이 철수하며 차벽이 허물어지자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 “청년이 이겼다”라고 외치며 환호했다. 현장에선 크라잉넛의 ‘좋지 아니한가’ 노래가 활기차게 울렸다.
남태령을 넘은 트랙터 10대는 동작대교를 건너 한남동 관저 앞까지 갔다.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남태령을 기어이 넘고야 말겠다는 시민과 농민들의 절절한 염원이 있었기에 관저 앞까지 트랙터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며 “윤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트랙터가 관저 앞을 향하는 것을 보며 관저 인근 한강진역 앞에서 다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참석했다. 집회가 해산된 후에도 시민들은 관저 맞은 편에 정차한 트랙터 앞에 모여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외쳤다.
22일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체포·구속 농민 행진 보장 촉구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트랙터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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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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