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창업 생태계는 일반적으로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폐업률은 OECD 대비 두 배 정도 높고, 5년 내 폐업 비율을 살펴보면 OECD 평균보다 10% 정도 높다.
스타트업 폐업률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필자는 재창업률을 높이면 된다고 본다. 한번 창업을 시도하고 실패하면 바로 취업전선으로 떠나고, 신규 창업자만 계속 나오면 폐업률이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 벤처창업 생태계에서도 실패를 용인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창업한 사람들의 성공을 칭찬하고 도전을 응원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필자는 스타트업 500여곳에 투자해왔는데 스타트업을 경영하다보면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신의성실을 다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창업자의 경우 재창업하거나 재기하려는 노력이 있으면 다시 투자를 하곤 한다. 물론 3년이라는 기준이 있기는 하다. 이 기준은 모태펀드가 지원하는 펀드에서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3년 내에 폐업을 하면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일단 최선을 다해 3년 이상 운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투자를 받고 금방 포기하거나 폐업하는 스타트업은 액셀러레이터 입장에서도 곤란할 수밖에 없다. 투자를 받은 지 1년이 되었는데 폐업하겠다고 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돈을 어디에 썼는지 감사하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3년 이상 최선을 다했는데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경우 마지막까지 도와주고 재창업을 한다면 도움을 약속하는 관계가 된다. 이러한 실패를 성실한 폐업, 성실 실패라고 부른다. 최선을 다해 경영한 창업자의 경우 사업을 운영했던 기간 동안 쌓아놓은 경험이 모두 노하우가 된다. 그래서 재창업할 때 첫 창업보다 훨씬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투자했던 회사 중에 보고플레이에 시드 투자를 한 적 있다. 회사는 매출이 1000억원 가까이 되면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투자 혹한기에 접어들면서 큰 채무가 발생했다. 직전에 모 벤처캐피털로부터 30억원 투자를 유치한 상황이었는데, 회사가 어려워져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당시 모 벤처캐피털은 보고플레이 창업자를 둘러싼 불성실 관련 오해가 있었으나, 소통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창업자 의사결정을 지지하게 됐다. 법정관리 신청으로 기존 채무가 지분으로 바뀌게 돼 창업자 지분이 2% 이하로 떨어졌다.
창업자는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피나는 노력으로 구조조정, 피봇팅을 통해 꾸준히 경영 정상화에 힘썼고, 손익분기점(BEP)을 다시 돌파했다. 그래서 현재 이 회사에 대해 추가로 2억~3억원 내외 투자를 하고 있다. 이처럼 창업자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의성실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폐업을 하게 되더라도 투자자가 끝까지 신뢰를 갖고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2000년에 에스엘투를 창업했고 현재 씨엔티테크는 2003년에 세운 두번째 창업 회사다. 에스엘투를 나온 후 군 복무를 했는데, 에스엘투 운영 당시에 기술보증기금에 연대보증 사인을 하고 회사를 넘겼고, 이 연대보증 채무가 2년 뒤 에스엘투가 문을 닫으면서 필자에게까지 넘어왔다. 그 결과 군 생활 도중에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기술보증기금 대출금을 매월 상환했고 2011년이 돼서야 마지막 상환을 끝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연대보증제도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한번 창업 후 폐업하면 빚을 갚느라 재창업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이제는 재창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연대보증제도 폐지 등으로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어느 정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다. 만약에 창업자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실패한 요인을 분석·보완해 다시 창업에 도전하다 보면 충분히 성공에 가까워질 것이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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