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축구선수에서 청년귀농인으로 [귀농귀촌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청년귀농 농업법인 초봄 황명선 대표

농업법인 ‘초봄’ 황명선 대표는 27살의 청년이다. 12월 20일 전남 영광 홍농읍 농장에서 만난 그는 농한기지만 한가하지 않았다. 황 대표는 660㎡(2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올해 재배한 콩 출하가 한창이었다. 이날도 황 대표는 광주에서 콩을 주문한 지인에게 배달을 나갔다. 비닐하우스를 가득 채웠던 콩 가마니는 채 10포대도 남지않았다. 올해 3만평의 들판에 콩을 심어 20t을 수확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황 대표의 원래 꿈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축구선수로 뛰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제2의 손흥민 선수가 되는 게 그의 인생 목표였다. 하지만 그런 꿈은 대학 2학년때 좌절됐다.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면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학리그 선수에서 그의 축구 인생은 멈췄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황 대표는 축구공을 만질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몰려왔다. 축구선수가 아닌 삶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그는 방황했다. 황 대표는 ‘쉼’이 필요했다. 그는 미뤄왔던 군에 입대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복무중 휴가때 전남 영광 홍농에 사는 큰 아버지를 찾은 게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큰 아버지는 “농사를 지어보라”고 권유했다. 큰 아버지는 논 3만3000㎡(1만평)을 빌려줄테니 콩를 재배해보면 어떠냐고 농사를 제안했다. 황 대표는 처음엔 손사래를 쳤지만 군에 복귀 후 마음이 달라졌다. “운동선수로 다져진 몸이라 농사를 지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주로 육체 노동을 하는 농사에 젊음을 받쳐 인생 승부를 내고 싶었다. 전역 무렵에 그는 틈날때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농사공부를 했다.

전역 후 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021년 대학 3학년에 복학했지만 코로나19 시기로 온라인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학교 대신 그는 농촌을 택했다. 큰 아버지가 빌려준 논 1만평에 검은 콩과 노란 콩을 심었다. 콩을 심고 풀을 뽑는 농사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도 가을이 되니 콩을 수확했다. 초보 농사꾼의 첫 수확량은 5t으로 평균 8t의 절반을 조금 넘었다. “비록 수확량은 적었지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황 대표는 첫 해 농사를 지어보고 자신감이 생겼다. 낯설고 어려울 것만 같았던 콩 농사에서 좌절감 보다는 희망을 본 것이다.

다음 해 그는 청년후계농업인을 신청했다. 다행히 대학 졸업예정자는 청년후계농 신청이 가능했다. 본격적인 농사를 뛰어든 것이다. 청년후계농에 선정되니 정부의 각종 지원 혜택이 뒤따랐다.

세계일보

1억원을 대출받아 콩을 재배할 논을 샀다. 농지은행에서는 논을 임대했다. 귀농 2년차에 콩 재배 면적은 2만평이 넘었다. 귀농 생활비는 매월 110만원이 나오는 바우처 카드로 해결했다. 이 바우처 카드는 3년간 지원을 받는다.

콩 농사를 지으면 직불금을 받는다. 콩은 정부의 전략작물에 해당돼 직불금 인센티브가 주어졌다.

귀농 3년차인 올해 황 대표는 콩 재배 면적을 3만평으로 늘렸다. 벼농사도 3만3000㎡(1만평)을 짓는다. 콩을 재배할 논과 밭을 꾸준하게 사들이거나 임대를 했다. “마을 주민들이 콩 농사를 지어보라고 임대를 주는 경우도 많아요” 콩 농사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처음 황 대표가 논에 콩을 심을 때만 해도 ‘저게 되겠냐’라는 반신반의하는 마을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귀농 3년차가 되자 마을사람들은 황 대표를 바로보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본격적인 콩 농사를 위해 황 대표는 농기계를 구입했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트랙터 한대가 농부 몇명의 몫을 해냈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콩 수확량은 20t으로 지난해보다 30%가량 늘었다. 매출은 1억원가량을 올렸다. 벼농사와 드론사업으로 6000만원을 벌였다. 그는 순이익이 얼마냐는 질문에 “대기업 직장 다니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 콩 재배면적으로 18만1500㎡(5만5000평)으로 늘릴 계획이다.

황 대표의 농사 멘토는 귀농인들의 SNS단톡방이다. “청년 귀농인들의 농사 소통 창구예요” 그는 단톡방에 농사관련 질문을 하면 원하는 답을 누군가가 올려준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그는 3년간 콩 농사를 하면서 노하우를 터득했다. 콩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풀이다. 콩 밭의 풀을 어떻게 없애느냐가 한해 농사를 좌우한다. 황 대표는 경험으로 콩 밭 제초 방법을 터득했다. 콩을 심을 때 제초제로 풀의 싹을 없애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다음엔 콩이 어느 정도 자라면 드론으로 제초제를 살포한다. 마지막에는 콩이 다 자라면 사람이 농약을 살포한다. 이렇게 하면 콩 밭의 풀을 잡을 수 있다.

콩의 판로에 대해서도 황 대표는 걱정하지 않는다. “노란콩은 정부가 수매를 해요” 그는 비교적 재배가 쉽고 수확량이 많은 노란콩은 정부가 대부분 수매를 한다. 검정콩의 판로는 지인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 부모는 물론 친구 등의 소개로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다. 검정콩은 건강식품 등으로 인기가 많아 벌써 거의 팔렸다. 검정콩은 재배가 까다로워 수확량이 노란콩보다 적은 편이다.

황 대표 귀농의 가장 큰 걸림돌은 외로움이다. “오후 8시만 되면 동네 전체가 캄캄해요” 15가구가 사는 마을 사람 대부분은 고령자로 농사조차 지을 수 없다. 이날 찾은 마을은 낮인데도 인기척조차 없었다. 황 대표는 귀농의 외로움을 자동차로 한시간이면 갈 수 있는 광주에서 친구들을 만나 푼다. 그는 귀농 3년만에 일찍 자고 새벽 4시쯤 일어나는 ‘농사 시계’에 적응했다.

황 대표는 예비 청년농에 ‘정부 5억 지원 혜택’을 너무 믿지말라고 당부했다. 청년농의 신용도 등 모든 조건이 갖춰질 때 최대 5억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청년농은 1억원 안팎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귀농할 경우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찮은 점도 예비 청년농이 신경써야 할 대목이라고 충고한다. 땅값이 비싸 워낙 원하는 땅을 구입하기도 쉽지않는 상황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앞으로 농촌이 희망이죠. 능력 있는 청년이 농업을 했으면 해요”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광=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