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실패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
내란 수괴 용의자 윤석열을 옹호하는 자들이 내놓고 있는 어지러운 논리들을 요약하면 이렇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1995년 전두환 내란죄 수사 결과를 변주한 것이다. 검찰은 전두환을 기소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성계가 쿠데타로 조선을 건국했는데 조선이 이성계를 처벌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 말은 불타는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화들짝 놀란 검찰은 "예견치 못한 중대한 사정 변경"을 이유로 전두환 일당을 기소한다.
이런 전복과 변주의 궤변은 윤석열식 세계관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예컨대 윤석열은 탄핵안이 가결된 후에도 "끝까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그 국민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위 쿠데타를 감행한 그의 태도는 흡사 쿠데타 세력에 권총 한자루 들고 대통령실에 남아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통해 "모든 작태에 맞서 (…) 나는 결코 사임하지 않겠다"고 절규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윤석열의 세계관에서 국회와 탄핵 집회에 나선 시민들은 전투기로 대통령실을 폭격하려는 반역자이고, 자신은 나라를 사랑하는 당당한 애국자다.
이런 전복적인 심리 상태는 윤석열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던 기간에 자주 보여준 것이다. 임기 5년짜리 분단 국가의 단임 대통령은 자신을 좌파, 공산전체주의, 반대한민국 세력에게 탄압받는 구국의 지도자, 개혁의 화신 쯤으로 상상했다. 청와대를 국방부 청사로 옮기고, 국군의날 군사 퍼레이드를 주관하면서 광화문의 어도(御道, 왕의 길)에 올라 제군의 사열을 지켜보는 그의 모습은 분명 권력에 취해 뇌 어딘가가 손상돼 있는 모습이었다.
많은 이들이 윤 대통령의 이런 정신 세계를 두고 '술'과 '주술', '용인술'의 '3술'을 떠올린다. 대통령의 '음주 사랑'은 너무나 유명한 얘기이고,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는 일거에 이 정부를 상징하는 레토릭으로 부상했으며 그의 용인술은 조폭의 그것과 닮아있다. '충암파'와 '용현파'를 주변에 두고 조폭 두목처럼 굴다가 급기야 한줌 '후배들'을 데리고 친위 쿠데타를 벌였다.
GDP 2200조 원의 세계 10위 안팎 경제 대국에 공무원만 100만 명이 넘는 나라, 시민들이 휴대전화 SNS로 계엄군을 촬영해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는 나라에서 충암파와 용현파 몇 명 데리고 쿠데타를 벌이면 그게 제대로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엔 쿠데타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이런 논리를 가져다가 자기 변호에 버젓이 사용한다. '2시간짜리 내란이 있느냐', '내란을 할 거면 주말에 했겠지'라면서. 자신을 바보로 조롱하는 것도 전유해서 '나는 내란범이 아니다'라고 강변하는 뻔뻔함은 윤석열이 그간 보여왔던 전복적, 전유적 카오스의 정점을 찍는다.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시기에 진중권 교수와 만나 나치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진 교수는 "이분(윤석열)이 얘기할 때 칼 슈미트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헌법에 대한 개념이 있는데 주로 나치 법학자였다", "우리나라 옛날에는 박정희 때하고 그다음 전두환 때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헌법에 대한 이해가 약간 칼 슈미트적이었는데 그 이후에 허영이라는 분이 계시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법치주의 그다음에 법의 통치를 해야 되는데(…)법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지적했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학자로서 유일하게 전범 재판정에 선 나치 부역자 칼 슈미트는 공동체의 위기상황을 예외상태로 규정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주권자로 규정한다.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 칼 슈미트가 전두환 시절까지 통용됐다고 말한 윤석열은, 21세기에 자신 스스로 '예외 상태'를 규정하고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해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어 세상을 '세탁'하려고 했다. 칼 슈미트는 이런 말도 했다. "민주주의가 독재의 결정적인 대립물이 아닌 것처럼 독재는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대립물이 아니다."
법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멘탈리티를 지적했다는 윤석열은 그 스스로 칼 슈미트를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에 '예외 상태'를 선언한 민주화 이후 첫 지도자가 됐다. 자신의 사상마저 스스로 전복시킨 것이다. 법을 수단으로 사용해 민의의 전당을 유린했고,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기본인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에 군인을 난입시켰다. 윤석열의 멘탈리티는 언제부터 파시즘과 칼 슈미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을까. 그가 '공산 전체주의'를 운운할 때, '반국가 세력'을 운운할 때, 이승만을 찬양할 때 우린 그의 멘탈리티의 실체를 알아봤어야 했던 걸까.
좌파의 음모론을 스스로 받아들인 사례도 있다. 윤석열이 빠졌다는 부정선거론의 원조는 방송인 김어준 씨다. 2017년 <더플랜>이라는 영화를 내놓은 후 민주당을 위시한 자유주의 진영에선 논쟁을 거쳐 이미 폐기한 바 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이 이를 뒤늦게 차용, 변주해 받아들였는데, 2020년 총선 이후 윤석열 탄핵안 처리까지 5년간 독버섯처럼 자라났고, 권력의 도파민에 취해 망상에 빠진 최고 통치자의 머리속까지 파고들었다.
음모론은 사이비 종교와 같다. 그 자체로 완벽한 논리적 순환 구조를 이룬다. 밖에서 볼 때는 기괴해 보이지만, 한번 음모론에 잠식된 자의 뇌는 반박하는 모든 논거를 부정하거나, 폐기함으로 음모의 논리적 구조 그 자체를 위해 복무한다. 특히 자기 통제력이 부족한 사람이 음모론에 쉽게 빠져든다. 주술에 빠지는 과정 역시 음모론에 빠지는 구조와 거의 같다. 음모론자가 컬트 종교의 리더가 되는 건 흔한 일이다. '좌파의 음모론'이라던 부정선거론을 그대로 차용해 믿고 있는 것도 '카오스적 인간' 윤석열을 상징한다.
그는 폭주하는 멘탈리티로 법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사유화해 논리를 전유하고 전복시켜 사회를 교란시키고 있다. 벌써 '윤석열은 죄가 없다'는 세력을 선동해 스스로 '컬트 지도자'가 되려고 하고 있다. '장님' 무사가 급기야 신흥 사이비 종교의 리더로 포지션을 바꿔잡고 있는 순간을 우리는 목도하면서 점점 지쳐가는 중이다.
윤석열의 '멘탈리티'는 두고두고 정치학자와 심리학자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이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폐허를 추슬러야 하는 우리에겐 또 다른 중요한 과제가 있다. 대통령을 선출할 때 정신감정을 하지 않더라도, 윤석열과 같은 리더를 다시 선출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 시스템의 결함을 점검해야 한다. 검찰과 군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정치 시스템도 돌아봐야 한다. 문제는 그 첫걸음이 돼야 할 국민의힘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에서 85명의 국회의원이 윤석열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들은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배신자', '쥐새끼'로 부르면서 색출해 쫓아내자고 하고 있다. 108명의 단일대오가 깨졌으니, 90명이 됐든 80명이 됐든 '윤석열 탄핵 반대 세력'으로 구성된 순정의 국민의힘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에 묻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나가서 '계엄은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계속 동의해 나갈 자신이 있는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을 지키자'고 할 자신이 있는가?
여기 명징한 두 가지 길이 있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 앞에서 반성하고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새로운 보수정당의 길을 모색하느냐, 그렇지 않고 윤석열의 카오스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냐. 후자를 선택한다면 부디 단일대오를 끝까지 유지해 "실패한 내란은 죄가 아니다"를 외치든, '컬트 지도자'로 자리잡은 윤석열을 지키든, '윤석열 탄핵 반대'를 내걸고 차기 대선을 치르길 바란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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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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