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도 안산시 소재 한 반지하 주택에서 다른 무속인과 함께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점집. 문에 ‘만(卍)’자와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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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찾은 경기도 안산 소재 한 반지하 주택에는 노씨가 다른 무속인과 동업하며 운영하는 점집이 있었다. 굳게 닫힌 문에는 ‘만(卍)’자와 함께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현관 옆엔 술·북어 등 굿이나 제사에 사용하는 물품이 놓여 있었다. 이곳엔 ‘○○보살’이라고 적힌 현수막 간판이 붙어 있었지만 이날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동업자라는 A씨는 “노 전 사령관과 함께 철학관을 운영한 것이 맞다”면서도 비상계엄과 관련한 질문에는 함구했다. A씨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노 보살 말이 께름칙했다” “힘드니 자꾸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노 전 정보사령관이 운영하는 점집 현관 옆에 놓여있는 술과 북어. 이찬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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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계엄 발령 이틀 전인 지난 1일 ‘햄버거 회동’이 있었던 롯데리아로부터 약 1.4㎞(도보 약 20분)떨어진 곳이다.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은 노씨가 문상호 정보사령관, 정모 대령 등과 롯데리아에서 만나 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 계획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노씨는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불명예 전역했다. 이후 점집을 운영한 것으로 인근 주민들은 추정했다.
동네 주민들은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80대 주민은 “계엄 같은 건 모르겠고 여긴 점집”이라고 말했다. 근처에 사는 50대 남성도 “남자 1명, 여자 2명이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며 “보살로 불렸던 인물이 노 전 사령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밝혔다.
경찰공조수사본부는 노 전 사령관을 김 전 장관의 ‘비선 문고리’로 보고 있다. 한 손으로는 이번 계엄의 ‘키 맨’인 김용현(육사 38기·예비역 중장) 전 국방부 장관의 귀를 붙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사 민원’ 등을 미끼로 현역 군 장성들을 쥐락펴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상원 |
대표적인 ‘충암파’로 꼽히는 여인형(육사 48기) 국군방첩사령관도 “계엄 직후 김 전 장관이 노씨에게 연락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렇듯 노씨가 계엄군 전반 운용에 관여할 수 있었던 건 노씨와 김 전 장관 간 탄탄한 인연 때문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김 전 장관이 1989년 무렵 소령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일 당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노씨가 같은 55경비대대에서 대위로 근무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 전 장관은 2007~2008년 박흥렬(육사 28기) 전 육군참모총장의 육군본부 비서실장으로 재직했고, 김 전 장관의 추천으로 노씨도 비서실 산하 정책부서의 과장급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당시부터 노씨에 대해 “정보 보고서를 잘 쓰는 친구”로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노씨는 특히 국방부와 국회 등에서 정보와 풍문을 수집하는 역할을 잘 했다고 군 소식통들은 전했다.
노씨는 특히 김 전 장관의 육사 38기 동기생을 비롯한 ‘정보맨 예비역 그룹’을 잘 챙겼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노씨는 윗사람을 모시는 재주가 비상했다”고 말했다.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노씨는 소위 임관 때 병과는 보병이었으나 소령 때 정보 병과로 ‘전과’했다. 한 소식통은 “이때 ‘노용래’란 이름도 ‘노상원’으로 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씨는 극히 폐쇄적인 정보병과에서도 국정원·청와대 파견 근무를 거치며 권력의 주변부에 항상 머물렀다고 한다. 한 전직 군 관계자는 “권력을 좇는 감각이 남달랐다”고 했다.
승승장구했던 노씨는 성추행으로 일순간 추락했다. 2018년 1월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임명된 그는 같은 해 10월 1일 국군의 날 교육생 신분의 부하 직원을 술자리 등에서 수차례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역 장성 신분으로 구속된 그는 1심 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심에서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예상을 깨고 비상계엄 사태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그가 김 전 장관과 계속 연을 이어왔는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 뒤 다시 접근한 것인지 등 명확한 경위는 파악되지 않는다.
평소 “진중한 성격”으로 평가받던 문상호(육사 50기·소장) 현 정보사령관까지 계엄 실행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 배경에도 결국 노씨가 있다는 관측이다. 문 사령관은 상반기 정보사 블랙요원의 기밀 유출과 하극상 사건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다. 그런 그가 노씨에게 구명을 청탁하고, 지난달 장성 인사에서 실제 유임되자 계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됐을 것이란 관측이 군 내에선 지배적이다.
노씨와 문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 때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밑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노씨는 대전고, 문 사령관은 대전 보문고로 동향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한편 경찰은 롯데리아 모의에 참여한 또 다른 민간인 김모 전 대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철재·정영교·이유정·심석용·이찬규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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