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피커] 그날 밤 운이 나빠서, 한 우주가 사라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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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란 이유로, 마이크를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스피커가 되는 저널리즘.
"올해 겨울은 남편이 정말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12월, 아이가 태어나는 날에 눈이 내려도 좋겠다던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이 사고로 떠난 지 이제 4개월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남편의 부재가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고, 멀리 어디 출장을 간 것 아닐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팁니다."
- 고 이주형 PD 배우자 탄원서 일부
지난 8월,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30대 프로듀서가 교통사고로 숨졌습니다. 퇴근길 탑승한 택시가 앞서가던 경차를 추월해 주차된 버스를 들이받았고, 머리를 크게 다친 승객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숨진 승객은 12월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던 고 이주형 PD입니다. 이 PD는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아이 초음파를 보면서 "우주를 엿보는 것 같다"고 아내에게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태어날 아이의 인생에서 펼쳐질 모든 기쁜 순간이 동시에 사무치게 슬픈 순간'이 되어버린 이 PD의 배우자는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의 슬픔을 견디고 있습니다.
"급하게 가달라는 말도 없었는데... 왜 70대 택시기사는 과속했나"
그리고 지난달 말, 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70대 택시기사 A 씨는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각각 깁스를 하고 휠체어에 탄 상태로 법정에 출석했습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70대 택시기사 A 씨는 제한속도 시속 50km 구간에서 80km 넘는 속도로 주행하다 전방 우측에 주차된 버스를 보지 못하고 충격하여 택시 뒷좌석에 탑승한 승객이 택시 앞부분으로 튕겨 나갔으며, 그로 인해 승객을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해당 택시 블랙박스에는 그날 밤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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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관련해 기억나는 것이 있느냐'는 재판장 물음에 택시기사 A 씨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제 실수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라고 건조하게 답했습니다. 이날 공판에는 고인이 된 이 PD의 아내가 출산을 2주 앞둔 만삭의 몸으로 출석해, 유족 의견을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운수업 종사자인 피의자입니다. 망가진 물건은 고쳐질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돈은 언젠가 다시 벌 수도 있겠지요. 피의자가 앗아간 것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거나 회복될 수 없는,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이란 것이 제 가슴에 사무칩니다. 부디 태어날 피해자의 아이와 남은 유족들의 삶을 고려하시어 재판부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엄한 벌을 내려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왜 유독 우리나라는 '사업용 차량 사고'가 많을까
시내 도로 한복판에서 '고령 택시운전자' 과실로 벌어진 사고의 이면에는 여러 사회적 원인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사업용 차량 교통사고 치사율'이 평균보다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사업용 차량 1만 대당 사망자는 3.3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평균(1.1명)보다 3배 더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사고를 당할 확률이 개인용 차량보다 더 높다는 뜻입니다. 사업용 차량별 사고 건수는 택시가 43%로 가장 많았고, 렌터카와 버스 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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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일반 차량에 비해 높은 사업용 차량 교통사고 발생률"은 다른 선진국과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 1만 대당 개인용 차량의 사고율이 154.8건인 것에 비해 사업용 차량은 32.1건, 영국의 경우 개인용 차량이 57.4건인데 비해 사업용 차량은 54.0건이라는 연구 결과1)도 있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오히려 사업용 차량의 교통사고 발생률이 일반 차량보다 낮은 겁니다. 이와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은, 운수업 종사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곱씹어볼 부분입니다.
1) 윤간우, 이상윤, 임상혁 <일부 법인 택시노동자의 교통사고와 불안전운전행동에 미치는 인적요인>, 대한산업의학회지 제18권 제4호,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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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평균 연령, 10년 전보다 6.15세 높아졌다
전체 택시 교통사고 중 65세 이상 운전자 사고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짚어볼 부분입니다. 9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사고의 운전자가 40년 경력의 70대 운수업 종사자였다는 점을 비롯해 올해 유난히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소식이 많았습니다. 실제 고령 운전자 사고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건 정부 통계로도 뒷받침됩니다. 최근 10년간 고령 운전자 사고 연도별 현황을 보면 사고 건수는 연평균 7.7%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특히 2023년도 고령 운전자 사고 건수는 전년 대비 14.3% 증가했습니다. 사망사고 가해 운전자 가운데, 가해자 연령이 만 65세 이상인 사고 비율은 29.1%로 전 연령대 중 고령 운전자의 비율이 가장 많았습니다.
전체적인 운전자 고령화 문제도 있지만, 운수업 종사자 중 운전자 연령의 고령화도 급속도로 진행되는 추세입니다. 사실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의 연령대를 미루어 짐작해 보고 '불안'을 경험한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택시운전자 평균 연령은 63.04세로, 10년 전보다 6.15세 높아진 걸로 파악됐습니다. 버스(56.16세), 화물차(52.64세) 역시 고령화 추세가 뚜렷했습니다.
고령 운전자는 고령화에 따른 운전 능력 감퇴나 교통사고 위험성 증가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일반 고령 운전자 택시 비고령 운전자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교통 상황에서도 사고 위험 인식 수준이 낮게 나타났는데 교차로 통과, 빗길 또는 눈길 운전 시, 비고령 택시운전자에 비해 사고 위험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게 나타났습니다.2) 택시운전자의 고령화 진행으로 인한 교통사고 증가가 뚜렷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령 운전자는 다른 연령대와 동일한 환경에서 택시를 운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한국교통연구원, <택시운전자 고령화에 따른 실태 분석 및 대책>,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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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버스·택시·화물차 기사 자격검사 '대폭 강화'
고령 운수 종사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제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정부는 만 65세 이상 버스·택시·화물차 운전자의 운전 적격성을 확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격유지검사 또는 의료적성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 65~69세는 3년마다, 만 70세 이상은 매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버스·택시·화물차 등 운수업 종사자의 자격유지검사 평균 통과율은 98.8%에 달했습니다. 시야각과 신호등, 화살표, 도로 찾기, 표지판, 추적, 복합 검사 등 운전에 필수적인 7개 항목을 적절히 수행하는지 평가하는 시험검사인데, 이를 받은 7만 1,553명 중 탈락자는 870명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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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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