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힌트를 지난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기 결과 발표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우리나라 성인(16~65세)의 언어능력 평균점수가 OECD 평균보다 낮았으며, 이것은 10년 전 시행한 1주기 언어능력 평균에 비해 24점 하락한 결과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뒤에 가려진 사실이 있었다. 지난 1주기(2013년) 때 중위권이었던 한국의 성취도가 이번 조사(2023년)에선 하위권으로 떨어졌고, 그 추락 속도는 참여국 중 가장 최악이었다는 점을 솔직히 말하지 않았다. 세대별 성취도 변화를 비교해보면 충격은 더 커진다. 한국의 경우 청년층(1989~1995년생)의 성취도는 1주기에 비해 19점 낮아진 반면, 중고령층(1958~1968년생)의 성취도는 42점이나 하락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성취도가 높았던 핀란드의 경우 청년층은 30점이나 상승한 반면, 중고령층의 하락폭은 14점에 그쳤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준1이하 집단의 비율이다. 이들은 언어능력이 가장 낮은 위기 집단으로서, 단순하고 짧은 문장 정도를 이해할 수 있거나 그것마저 어려울 정도의 낮은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 국가별로 비교하면, 수준1이하 집단의 비율이 OECD 평균 26%이며 핀란드가 11%인 반면, 한국은 31%나 된다. 말하자면 대략 전 국민의 3분의 1이 언어능력 위기집단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소득과 연령별로 편포되어 있으며, 특히 55세 이상의 중고령층에 다수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수준은 국민의 학습수준과 정비례하며, 언어능력은 정치문해력 향상의 기초가 된다.
물론, 인간의 지적 능력은 30~40대를 넘어가면서 자연적으로 하락하며, 아무런 보정을 하지 않는다면 언어능력 역시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 OECD 여러 나라에서 우리만큼의 급속한 하락을 경험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도록 열심히 재학습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평생학습참여율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겨우 32% 정도에 불과하지만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그 두 배에 달한다. 말하자면 전체 성인의 3분의 2 이상이 열심히 학습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의 평생학습참여율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올리지 않는다면 한국 성인인구의 노동력/시민력의 심각한 하락세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특히 중고령층의 정치문해력 저하로 인한 정치분열을 지속적으로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이와 더불어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유튜브 중독’ 현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2주기 조사 성취도가 참여국 전체에서 하락세를 보이는 이유는 유튜브, 틱톡, 쇼트폼 등 동영상 플랫폼의 만연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현상은 특히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다. 한국인의 유튜브 시청 시간은 월평균 40시간을 넘고 있으며, 지난 5년간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게다가 50대 이상 중고령층은 유튜브를 통해 주로 뉴스/시사 프로그램을 소비한다. 요컨대 중고령층의 ‘저하된 언어능력’과 ‘유튜브 사용시간 증가’는 오늘날 중고령층의 정치문해력에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계엄이 그의 지독한 극우보수 유튜브 시청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 유튜브는 구어와 화상을 연결한 언어소통방식이며, 이것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글 메시지와는 극명한 차이를 가진다. 유튜브 내용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텍스트 기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보다 어렵다. 이제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직접 우리의 생각 속을 헤집고 다니며 행동을 흔들어댄다.
정치개혁은 시민의 정치문해력을 통해 나오며, 정치문해력은 탄탄한 언어 및 수리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국민이라면 결코 내란을 선동하는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정당을 막무가내로 지지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고, 비판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정치인들을 이 땅에서 축출할 수 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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