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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삶과 문학에서 식물이 가진 의미들 [생명과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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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편집자주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반려동물부터 지구의 생물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소개한다.

한국일보

작가 한강이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브 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 문학상을 받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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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유일하게 가입한 동아리는 학과 내 '식물반'이었다. 전국 산야를 다니며 꽃과 나무를 찾아 이름을 외고, 꽃 사진과 표본 전시회를 하는 모임이었다. 입학 첫 학기 여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한식물도감(이창복 지음)'과 접사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를 장만하던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비싼 필름을 아끼기 위해 조리개 수치와 셔터 속도를 기록하며 사진을 찍고, 처음 본 꽃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밤늦도록 도감을 뒤적이던 기억은 이제 아득해졌다. 그러나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눈을 맞추고, 도감을 찾아 이름을 알게 된 그 꽃과 나무들은 여전히 내 지식 많은 부분의 원천이 되고 있다. 가끔은 위안을 얻는 친구가 되고, 삶의 방식을 배우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 대학원에 진학해 식물학을 전공하고 직장도 얻게 되었으니 지금의 생계도 결국 꽃과 나무들 덕분인 셈이다.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꽃과 나무는 작품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교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작품 속 나무는 주인공이고, 배려와 공감, 희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격체다. 헤르만 헤세와 박완서의 작품 안에서 식물과 꽃은 작가로 하여금 정체성을 찾거나 감정을 대리하고,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의인화된 매개체로 자주 등장한다. 그들이 작품에 인용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하게 꽃과 나무를 살피고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 작품을 읽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작품에 묘사된 꽃과 나무에 대한 내용을 모아 별도의 책을 내기도 했을 정도다.

주말 동안 한강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 수많은 군중도 모두 1인칭 시점으로 살아가고 문학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있다며 작금의 세태를 꾸짖는 듯한 그녀의 노벨상 수상 소감이 시에서도 읽혀졌다. 그러나 여느 시인들의 시에서와는 달리 그녀의 시에서 꽃과 식물을 찾기는 어렵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詩語)는 ‘피’였고, 피는 꽃과 나무를 대신해 생명과 영혼을 역설하고 있었다.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극단적인 채식을 통해 나무가 되고자 했던 영혜의 저항이 시에도 배어 있었다. 영광과 기쁨의 시상식에서조차 밝은 표정을 짓지 못하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그녀를 오히려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든 건 나뿐이었을까?
한국일보

서효원 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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