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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횡설수설/김승련]‘레이디 맥베스’에 김 여사 빗댄 더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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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윤석열 대통령을 맥베스로, 김건희 여사를 그의 부인 레이디 맥베스로 빗댄 기사를 썼다. 기사에 맥베스란 표현은 도입부 딱 한 문장에만 등장한다. 우리에게 춘향전이 그렇듯이, 영국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Macbeth)’는 설명이 필요 없나 보다. 서사(敍事)나 주인공 설명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편집자는 “한국인은 비상계엄 선포에 그들의 ‘레이디 맥베스’를 문제 삼는다”는 제목을 뽑았다.

▷‘맥베스’의 줄거리를 듣다 보면 한국 정치가 절묘하게 겹쳐진다. 충신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왕을 위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최측근인 부관과 함께 왕의 총애를 받았다. 귀로에 마녀 셋을 만나 들은 ‘왕이 될 운명’이란 말에 흔들렸다. 그가 머뭇거리자 아내 레이디 맥베스는 뭐가 두렵냐며 부추겼고, 그는 주군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왕국이 혼돈에 빠지는 동안 자신의 최측근 부관까지 제거하게 된다. 맥베스 부부는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정치인 문재인, 윤석열, 한동훈이 떠오른다는 이들이 많다. 김건희 여사도 함께.

▷영국 기자에겐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에 관여한 김건희 여사가 레이디 맥베스로 보인 것 같다. 김 여사는 검찰총장인 남편 업무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후보 시절엔 핵심 참모 이상의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말까지 꺼냈다. 여기에 손바닥의 왕(王)자, 김 여사가 유튜버 방송 기자의 손금을 봐 주며 “내가 잘 보죠”라고 말하는 영상, 하얀 수염의 풍수전문가까지 등장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 ‘예언’처럼 무대에 올릴 만한 요소가 갖춰졌다.

▷윤 대통령은 왜 반헌법적인 데다 황당하기까지 한 비상계엄을 실행에 옮겼을까. 총선 전부터 지나가는 말처럼 “야당이 저러면, 계엄으로 정리하면 되지”라고 말하곤 했다는 얘기가 용산 안팎에서 들린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의 국정 방해”를 이유로 댔다. 설사 그렇더라도 군을 국회에 투입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음성파일에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한 것 아닐까 하는 추측이 끊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맥베스 비유를 먼저 꺼낸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2021년, 2024년 2번이나 공개적으로 ‘맥베스 부부의 비극적 최후’를 거론했다. 대문호지만,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은 요즘 기준으로 봐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고 평가받는다. 진짜 기가 막히는 일은 400년이 지난 한국에서 그런 막장이 현실로 살아난 듯하고, 적잖은 영국 독자들이 한국 정치를 흥밋거리처럼 바라보게 됐다는 점이다. 궁지에 몰린 대통령 부부의 처지가 셰익스피어쯤 되어야 할 수 있는 창작처럼 느껴진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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