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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화)

[르포]국산 전기버스 살린다며 운수업계 발목 잡은 尹 정부...보조금 정책 '뒤탈' [Car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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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전기버스 점령" 여론 비판에
정부 'LFP 배터리' 효율 문제 삼아
보조금 혜택 최대 4,500만 원 낮아져
수입 이후 출고대기 차량 수십 대
국산 전기버스 비율 확대 목적 불구
공급이 업계 수요 충족 못하는 아이러니
업계 "보조금 승인 지연, 선택권 제한
차량 교체 시기 놓쳐 업체·승객 피해"
정부 "배터리별로 차등...차별 아나"
한국일보

경기 평택시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에 출고를 기다리는 전기버스 80여 대가 주차돼 있다. 평택=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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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8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 한편에 중국 A 브랜드 전기버스 80여 대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 버스들은 한 국내 업체가 A 브랜드 버스를 주문받아 계약을 끝낸 뒤 들여온 것으로 환경부의 보조금 집행 승인만 기다리고 있었다. 2023년에는 대기 차량이 쌓이는 경우가 없었는데 올해는 몇 달씩 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버스가 크게 늘었다. 심지어 4월에 들어온 뒤 6개월 넘게 바깥에 서 있는 차량도 있다고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환경부 보조금 승인이 9월까지 꽉 막혀 있다가 10월부터 서서히 풀리는 중"이라면서도 "언제 이 많은 버스가 다 주인에게 인도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경기도의 한 버스 운수업체 대표는 올해 초 계약한 B 브랜드의 중국산 전기버스를 8, 9개월이 넘게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버스 회사는 통상 운행 연한(10년 안팎)에 맞춰 노후 차 교체(대·폐차) 계획을 세우는데 이 회사도 이에 맞춰 올해 교체할 버스 다섯 대를 전기버스로 주문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났는데도 버스를 받을 수 없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주문한 전기버스는 배를 타고 이미 국내에 들어와 물류 창고에 있는데 정부의 보조금 승인이 지연되면서 대기만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회사 대표는 "노후 차가 멈추거나 사고가 나면 승객 안전을 위협할 수 있어 매일 가슴을 졸이고 있다"며 "정부의 오락가락 보조금 정책 때문에 영세 버스 업체와 승객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가 올해 들어 사실상 중국산 전기버스 보급을 제한하고 국산 전기버스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도입하면서 몇 개월째 버스를 받지 못한 영세 운수업체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문제는 제때 버스를 받지 못한 운수업체는 차가 고장 나면 오래된 부품을 수리하며 버티는데 자칫 낡은 버스가 도로에서 고장 나 멈추거나 사고가 나면 승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버스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운수업체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보조금 승인 속도를 일부러 조절했다는 주장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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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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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환경부는 2월 올해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재활용성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고 알렸다. 일반적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 거리가 짧고 순간 출력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LFP 배터리는 값이 저렴하지만 NCM 배터리보다 사용 후 재활용 가치는 떨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환경부는 NCM 배터리 대비 LFP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을 낮췄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정부가 겉으로는 환경성 계수 등을 따져 보조금 차등을 뒀지만 속내는 중국산 전기버스를 막기 위한 대응책을 낸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신규 등록 전기버스 중 중국산이 54%(1,522대)를 기록해 처음으로 국산(1,293대)을 앞질렀다. 이에 올해 초 언론을 중심으로 중국산 전기버스가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졌고 중국산 제품에 혈세를 보조금으로 퍼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 대책을 수정해 내놨다는 것이다.

중국산 전기버스 보조금 수천만 원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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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D eBUS 12.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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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보조금이 줄자 중국산 전기버스가 직격탄을 맞았다. 주로 LFP 배터리를 품은 중국산 전기버스에 대한 보조금이 올해부터 수천만 원 줄었다. 예를 들어 간선버스에 주로 쓰이는 BYD(비야디)의 'eBUS 12'는 지난해(4,990만 원) 대비 보조금이 2,800만 원가량 줄었다. 지선버스 등으로 많이 보이는 'eBUS 9'는 현대차의 동급 모델 '일렉시티 타운'(6,859만 원)보다 4,500만 원가량 보조금이 낮게 책정됐다.

현재 전기버스를 만드는 국내 주요 업체는 현대차, 우진산전, KGM커머셜(옛 에디슨모터스) 등이고 중국 업체는 BYD, 하이거, 킹롱 등이다. 중국 전기버스는 국내 수입사가 주문을 받아 중국에서 제작한 전기버스를 배에 실어 들여와 운수업체에 인도한다. 올해 보조금이 줄면서 상반기(1∼6월) 국산 버스 신규 등록 건수는 59.3%를 기록해 다시 중국산 전기버스 점유율보다 높아졌다. 보조금 조절 효과가 통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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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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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버스업계에서는 정부가 보조금을 조절한 것뿐만 아니라 중국산 전기버스에 대한 보조금 승인을 고의로 늦춰 비율을 조절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운수업체가 자유롭게 중국산이나 국산 전기버스 중 선택을 할 수 있게 두는 것이 아니라 중국산 버스에 대한 보조금을 상대적으로 느리게 지급하게 해서 중국산 전기버스를 구입한 운수사업자는 몇 개월씩 대기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국토부의 신규 전기버스 등록 현황을 보면 1~3월 국산 전기버스 등록 대수가 중국산 전기버스보다 20~30대가량 앞서다가 4월에 다시 중국산 전기버스가 국산 전기버스보다 30여 대 많아졌다. 그러자 갑자기 5월부터 다시 추세가 역전돼 중국 버스가 국산 버스의 3분의 1에서 절반 수준을 유지했다. 이로써 9월까지 국산 대 중국산의 비율은 약 65% 대 35%를 기록하고 있다.

국산 버스는 수요 못 맞춰...중국산은 창고에서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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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오랜 기간 출고 대기 중인 전기버스가 주차돼 있다. 360도 카메라 촬영. 평택=하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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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창고에서 대기해야 했고 국산 버스는 공급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운수업체 관계자들이 전기버스를 구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다. 국내 업체 중 가장 많은 버스를 만드는 현대차는 9월까지 1,300대 가까이 전기버스를 생산했는데 이는 이미 지난해 연간 생산한 전기버스(841대)의 1.5배가 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신규 등록 전기버스가 2,815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국산 전기버스 공급은 수요에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라인을 늘리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장기 수요전망 등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공급량을 크게 늘리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한 운수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버스 등록 담당자에게 운수 사업자가 국산 전기버스를 살 수 있게 유도하라는 구두 압박을 넣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국회 국정감사 즈음해서 국산 대 중국산 비율을 조절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한 운수사업자는 "현대차 전기버스는 이미 2025년 계약까지 마감됐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운수업체가 제때 버스를 구하지 못해 노선을 축소·폐지해야 할 상황에까지 내몰리자 한 버스조합은 정부에 공문까지 보내며 문제 해결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버스사업조합 관계자는 "국산 전기버스 위주 보조금 정책과 출고 지연 문제로 현장에서는 대·폐차 일정 차질 등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환경부에 여러 차례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며 "행정 소송을 거론하는 사업자들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재활용 가치 등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며 "특정 국가 차별은 할 수 없고 예산이 모자라기 때문에 수요 등을 고려해서 보조금 지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수원=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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