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튀르키예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이 최근 '먼 산의 기억'이라는 에세이를 발간해 한국 기자들과 서면으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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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 튀르키예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16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비상계엄과 관련한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최근 에세이 '먼 산의 기억'을 출간한 파묵은 "지금 한국에서는 국민의 75%가 대통령에게 화를 내고 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이 상황을 일기에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75%의 한국인이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국내 여론 조사 결과를 말한다.
'먼 산의 기억'은 20대 때 화가를 꿈꿨던 파묵의 기억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그림 일기 형식으로 문학과 이미지의 관계, 소설 쓰는 과정, 풍경에 관한 사유 등 평소 그가 고민하는 일상의 편린(片鱗)들이 담겼다.
그림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든 셈인데, 자신이 한국에 있었다면 이 일기에 비상계엄 사태를 적었을 것이라는 게 파묵의 설명이다.
파묵은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튀르키예에서 금기하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진보적 발언으로 자국 내 우파 세력에 의해 생명의 위협까지 받은 작가다. 이로 인해 그는 튀르키예를 떠났고, 현재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책 '먼 산의 기억' 표지 |
파묵은 대표적인 비(非)서구권 수상자로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동서양이 충돌하고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특성을 개인의 삶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던 파묵은 노벨문학상의 의미에 대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짧게 답했다.
파묵은 1952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파묵은 화가를 꿈꿨지만, 불현듯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을 출간했고, '하얀성', '새로운 인생', '내 이름은 빨강'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문학과 이미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파묵은 초등학생 시절을 회고했다. 그림 위에 글을 쓰려고 하자 선생님이 안 된다고 말렸던 것. 파묵은 "현대주의 시대에 들어와 그림 위에 글을 쓰면 안 되고, 혹은 그림과 글이 서로 맞물려 있으면 안 된다 등의 말이 있었다"라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파묵은 일기장에 글과 그림을 자유롭게 결합해 자신만의 풍경화를 완성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다. 그 흥미의 결과물이 이번 책이다. "바람에 시끄럽게 바스락거리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단어들과 글자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며 한참을 기다렸다"라는 그의 말에서 풍경과 글쓰기, 그림과 문학의 관계성을 엿볼 수 있다.
취미가 독서와 영화 감상이라는 파묵은 최근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를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넷플릭스에서 3번 정도 봤다. 최근 3~5년 사이에 봤던 영화 중에 가장 좋았다"라고 말했다. '로마'는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가정 내 불화와 사회적인 억압을 묘사한 영화다.
파묵의 소설 ‘순수 박물관’은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있다. 그는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니 74개국에서 볼 수 있다”라며 한국에서도 좋은 결과기 있길 바랐다.
'순수 박물관'은 파묵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선보인 소설이다. 소설은 한 남자가 단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한 여자를 평생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을 모으고, 그 물건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6년 튀르키예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이 최근 '먼 산의 기억'이라는 에세이를 발간해 한국 기자들과 서면으로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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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은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글쓰기를 추천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서서히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만의 언어를 발전시키고, 그렇게 발전시킨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라"고 조언했다. 남이 아닌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게 파묵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 앞에 수동적이고, 무의미하게 대처하는 대신에 능동적이고 활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오르한 파묵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에게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튀르키예어로 번역된 그녀의 작품들이 나왔는데, 구입해 놓았다. 곧 읽을 것"이라며 "한강 작가님께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라고 밝혔다.
[이투데이/송석주 기자 (ssp@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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