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11일 극우 유튜버 고성국씨가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를 촉구했다. ‘고성국 티브이(TV)’ 갈무리(왼쪽). 윤 대통령은 바로 다음날인 12월12일 오전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연합뉴스(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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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2024년 12월11일,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은 긴급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전국민을 공포와 절망에 빠지게 한 12·3 내란사태가 사실상 부정선거에서 비롯했다는 일종의 음모론 때문에 시작됐음을 알리는 발언이다.
극우 유투버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야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해킹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제21대와 제22대 총선, 제8회 지방선거 등의 결과를 조작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애초 부정선거 음모론을 처음 제기한 건 방송인 김어준씨다. 김어준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제18대 대선 때 투표지 분류기가 분류를 못 해서 수개표한 표 가운데 박근혜 후보의 표가 문재인 후보의 표보다 1.5배 많았다는, 이른바 ‘K값’ 의혹을 제기했다.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2017년 치러진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의 주체는 극우 유튜버들로 바뀌었다. 야권이 승리한 제21대와 제22대 총선 등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소수의 극우 성향 정치인과 유튜버들 사이에서 점점 더 확산했다. 그러다 급기야 내란사태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머릿속까지 지배하고, 결국 비상계엄 선포라는 폭력적 조처로 현실화한 것이다. 특히 대통령 윤석열의 발언은 최근 나온 극우 유투버들의 발언에서 고스란히 따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수두룩하다.
극우 유튜버 주장 100% 따른 윤석열 담화문
극우 성향의 정치평론가 고성국씨는 대통령 윤석열의 담화가 나오기 하루 전인 12월1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고성국 티브이(TV)’에서 “우리는 대통령의 설명을 직접 듣고 싶다”는 제목으로 칼럼 형식의 영상을 올렸다. 고씨는 “윤 대통령은 당당하게 나와서 왜 비상계엄이라는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혀달라. 시간이 별로 없다”고 재촉했다. 이에 화답하듯 대통령 윤석열은 바로 다음날인 12월12일 오전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긴급 대국민 담화는 내용조차 고씨의 주장을 고스란히 따랐다. 고씨는 12월11일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군의 국회 진입을 한 시간 후로 지시했다”며 “윤 대통령은 국회 관계자들의 출입을 막지 말고 충돌을 피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통령 윤석열은 12월12일 담화에서 “질서 유지에 필요한 소수의 병력만 투입하고, 실무장은 하지 말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으면 바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했다”는 말로 고씨의 주장을 100% 반영했다.
고씨가 12월11일 올린 영상에서 “윤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장 먼저 계엄군을 보낸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된 계엄군 행동이었다는 추측을 하게 됐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음을 설명해야한다고 역설하는데, 대통령 윤석열은 이 주장 역시 대국민 담화에 충실히 반영한다. 29분의 담화 발표 가운데 4분의 시간을 할애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를 편 것이다.
‘내란죄 피의자’ 대통령 윤석열이 담화에서 언급한 ‘비상계엄이 내란죄가 될 수 없다’고 말한 논거 역시 고씨의 유튜브에서 먼저 나왔다. 고씨는 12월9일 “내란죄 절대 성립 안된다”, 12월10일 “내란죄? 법을 좀 알고나 얘기하라” 등의 영상에서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법적으로 내란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상 통치 행위로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비상 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언급한 것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는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강조한다.
조기퇴진을 거부하고, 차라리 탄핵을 택하겠다는 선택도 극우 유튜버들의 주장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윤석열은 12월7일까지는 ‘조기퇴진’도 선택지에 올리고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담화에서 “저의 임기 문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이후 한동훈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가 탄핵 대신 ‘2·3월 퇴진 로드맵’을 준비하고 제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12월11일 한 대표는 윤 대통령 설득을 포기한다. “윤 대통령이 조기퇴진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이야기가 한 대표의 측근으로부터 나왔다.
역시 ‘조기퇴진보다는 탄핵을 당하는 편이 낫다’는 선택도 극우 유튜버가 제안했다. 고씨는 12월10일 ‘이재명과 한동훈의 노림수’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에서 “한동훈이 대통령 직무정지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그가 대통령을 탄핵보다는 조기 하야로 몰아가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씨는 같은 날 올린 ‘어떻게 할 것인가’ 영상에서는 “대다수 자유파는 탄핵을 막는 것이 우선이지만, 자진 하야보다는 차라리 탄핵과 정면으로 맞서 헌법재판소에서 승리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대통령은 강력한 정당성을 갖게 되며, 종북 주사파와 한동훈 세력을 척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극우 성향 유튜버의 주장을 고스란히 차용한 대통령 윤석열은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조기퇴진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한겨레21은 고씨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윤 대통령이 직접 조언을 구하기도 하느냐’고 물었지만, 고씨는 답하지 않았다.
대통령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 30명 초대
대통령 윤석열의 극우 유튜브 사랑은 오래됐다. 그는 2022년 자신의 대통령 취임식에 극우 유튜버 30여 명을 대거 초청하기도 했다. 이봉규 티브이(TV), 시사창고, 시사파이터, 너알아티브이, 짝찌티브이, 애국순찰팀, 가로세로연구소, 자유청년연합, 정의구현박완석 등의 운영자들이다.
특히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엔 극우 유튜브 이봉규 티브이의 운영자 이봉규씨가 “(윤 후보가) 자면서도 내 방송을 본다”고 주장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2022년 8월5일 이봉규 티브이에 출연해 대통령 윤석열이 휴가 중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농성 중인 활동가들에게 폭언을 쏟아내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양산 사저 앞에서 욕설 시위를 벌여 논란이 됐던 극우 유튜버 안정권씨의 누나가 대통령실에 채용되기도 했다.
“이제 극우 유튜버 구독부터 취소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구글 출신의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한 말이다. 이 의원은 12월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윤석열이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세력’, ‘여론 조작’과 ‘부정 선거’ 모두 극우 유튜버들의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라며 “국가 권력 서열 1위 대통령이 알고리즘의 확증편향과 편집증에 빠진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이 의원 역시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극우 유튜버의 향기’를 읽어냈다. 이 의원은 “어제(12월11일) 담화를 분석하면서 알게 된 점은 윤석열씨가 일부 극우 유튜브에 떠도는 부정 선거설에 진심으로 동의했다는 점”이라며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부정 선거, 선거 조작을 꼽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여권에서도 이미 대통령 윤석열의 ‘극우 유튜브 중독’을 우려해왔다. 김웅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4년 6월2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는 진짜 대통령에게 유튜브 좀 그만 보시라고 정말 말씀드리고 싶다”며 “유튜브 보지 마시고 많은 분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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