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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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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유럽에서 바그너와 브루크너를 만나다[유윤종의 클래식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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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바이로이트 음악축제에 찾아온 브루크너(오른쪽)와 그를 맞이하는 바그너를 그린 오토 뵐러의 실루엣화. 브루크너는 바그너를 경모했지만 음악극에 매진한 바그너와 달리 교향곡에서 자신의 사명을 발견했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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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저녁 6시(한국시간 4일 새벽 2시). 비행기가 주기장에 도착한 뒤 휴대전화를 켰다. ‘비상계엄’으로 시작하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이 시간 내가 어디에…’라는 고립감이 온 몸을 감쌌다.

열흘 동안의 초겨울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네 공연장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두 곡,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듣는 여정이었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안톤 브루크너(1824~1896)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바그너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번 등 여러 작품에서 바그너의 음악적 특징들을 오마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더 이상 다를 수 없었다.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1848년 유럽 시민혁명 당시 체제를 지키는 국민경비대에 입대했다. 바그너에게 종교는 영웅주의의 표현이었다. 1848년 혁명 당시 그는 극장의 지붕에 올라 혁명기를 흔들었고 현상금이 붙은 채 망명생활을 했다.

브루크너는 외모에 관심이 없었고 안정된 생활을 추구했지만 바그너는 호사스런 차림으로 유명했고 후원자에게 손을 벌리더라도 늘 호화롭게 살았다. 문학과 철학 등 지식계의 모든 분야에 의견을 표명했다. 브루크너는 종교와 음악 외에 관심 있는 분야가 없었으며 연애에 서툴렀고 독신으로 살았다. 바그너는 여러 귀부인들과 염문을 뿌린 뒤 지인인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를 빼앗았다. 친구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였다.

4일,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에서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지휘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은 브루크너 교향곡 1번은 현악과 금관 파트들의 밀도 높은 합주력이 돋보였다. 강박적인 이른바 ‘브루크너 반복’, 전체 합주가 갑자기 쉬는 ‘브루크너 휴지(休止)’등 브루크너의 개성들은 초기 교향곡부터 발견된다. 6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에서 앨런 길버트 지휘 북독일방송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은 교향곡 8번은 브루크너 특유의 양감을 빌드업하는 지휘자의 뚝심이 인상적이었다.

두 작곡가의 성향은 음악적인 면에서도 그들이 선택한 장르에 따라 뚜렷이 갈린다. 바그너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이 형식의 종말을 알리는 기념물로 간주했고, 음악과 문학, 미술 등 여러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예술’로서의 음악극을 꿈꾸었다. 브루크너는 교향곡에서 신이 부여한 과제를 찾아냈다.

바그너는 자신이 지은 실제 소리의 건축물들 못지않게 자신이 개혁한 음의 재료와 설계방법으로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 화성과 관현악법의 혁신을 이뤘으며 그의 후예인 말러, R 슈트라우스, 푸치니, 시벨리우스 등이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영역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브루크너는 그 첫 영향권에 든 작곡가였다.

브루크너는 바그너 음악극의 장엄함과 숭고, 서사적 성격을 교향곡에 끌어오려 했다. 바그너의 혁신적인 화성을 도입했고 바그너가 강화한 금관악기의 두터운 질감을 자신의 버전으로 소화했다. 교향곡 6번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지막 교향곡인 9번에는 ‘파르지팔’의 동기들이 엿보인다. 특히 두 사람을 묶는 큰 지향점으로 ‘거대한 정신적 고양’을 꼽는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법열(法悅)에 가까운 웅대한 클라이맥스는 두 사람의 음악을 지배했다.
8일 운터 덴 린덴 거리에 있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장인(匠人)가수’를 감상했다. 두 차례의 휴식을 포함해 여섯 시간이 걸리는 대규모 공연으로 이 작품을 전막 감상한 것은 베이스 연광철이 야경꾼 역으로 출연한 1998년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에 이어 두 번째였다. 21세기 기업을 상징하는 배경 위에 현대와 중세 의복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절충주의적 무대였다.

여행의 마지막 공연은 바그너가 감독으로 재직했던 드레스덴의 오페라극장 ‘젬퍼오퍼’에서 9일 감상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인터메초’였다. 부부간의 다툼을 그린 가벼운 내용이지만 바그너의 예술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하는 휘황한 관현악의 질감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여러 면에서 기억에 남을 겨울 여행은 그렇게 여운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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