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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양성희의 시시각각] 85표의 반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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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20대 딸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을 챙겨들고 여의도로 갔다. 친한 친구 중 탄핵 집회에 나가지 않은 애들이 없다고 했다. 45년 만의 초현실적 비상계엄.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을 한순간도 더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가 색색의 응원봉과 K팝을 만나 유쾌한 정치연대의 장이 됐다.



여당 내 12표 이탈로 탄핵안 가결

친윤 중심 단일대오 외치는 국힘

국민 외면받으며 쇄신 가능할지

‘찬성 204, 반대 85’. 전국의 거리에 환호성이 터졌다. 여당 의원 12명이 당론을 거슬러 찬성표를 던진 결과였다. 여의도 거리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위에 불을 붙인 이화여대 시위 현장에서 처음 불렸던 그 노래다. 이번 시위에는 10대에서 2030에 이르기까지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단연 돋보였다. 대구 집회에서는 “우리는 보수의 텃밭이 아니다.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라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윤석열 정부의 ‘안티 페미니즘’ 기조가 2030 여성을 광장으로 불렀다는 진단이 나왔다.

탄핵안 가결 후 TV 카메라 앞에 선 대통령은 담담한 어조로 그동안의 업무를 자화자찬하더니 “고되지만 행복했던 여정을 잠시 멈춘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괴이한 담화를 내놨다. 실패한 대통령의 비통함이나 대국민 사과, 통렬한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비정상적 사고였다.

극우 유튜버들의 ‘부정선거 음모론’ 등에 사로잡혀 자해적 폭주극을 벌인 장본인은 별 미동이 없는데, 정작 울먹인 건 ‘탄핵 찬성 1인 시위’를 했던 여당 초선 김상욱(울산) 의원이었다. 그는 “내가 만든 대통령을 내 손으로 끌어내렸다. 누구보다 헌법 질서를 지키는 보수의 가치를 대통령이 저버렸다. 국민께 죄송하다. 건강한 보수를 만들 수 있게 응원해 달라”고 인터뷰했다.

반면에 국힘 의원의 절대다수인 85명은 국민 75%가 찬성하는 탄핵에 반대했다. 말로는 탄핵 반대가 계엄 옹호는 아니고 탄핵 이후 혼란상을 우려한다지만, 3일 밤 긴박한 계엄 해제 결의 순간에도 18명의 여당 의원만이 동참했던 걸 온 국민이 지켜봤다. ‘친윤 중진’ 윤상현 의원은 “비상계엄은 통치행위고, 국민들은 1년만 지나면 잊고 또 찍어주니, 대통령에게 의리를 지키자”고 했다. 그는 김상욱 의원의 시위를 만류하면서도 “절대 정권을 내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애초에 정권을 내줄 일 없게 대통령을 잘 인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8년 만에 또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도 과거 탄핵에서 ‘배신자 프레임’ 말고는 별반 얻은 게 없고 쇄신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차제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와 적대적 진영 정치의 극복을 위한 근본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큰 표 차로 원조 친윤을 신임 원내대표에 앉힌 국힘은 이제 한동훈 당대표 축출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나마 계엄해제 결의,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 최악의 상황을 면케 만든 한 대표마저 몰아낸다면 국힘의 미래는 무얼까. 관계자의 말대로 “당원의 20~30%는 ‘부정선거론’을 믿고” 보수층의 50%, 국힘 지지자의 66%가 탄핵 반대라는 나름의 사정은 있을 것이다(갤럽 조사, 보수층 46%는 탄핵 찬성). 그러나 강성 지지자에게 휘말려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특정 지역·세대 기반으로 폭을 좁힌 채 의원 개개인의 안위만을 노린다면, 그 선택에 대한 후과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한 민주당 패널은 라디오 방송에서 “국힘은 지지율 최대 15~20%인 극우 정당을 지향하는 것인가. 더는 대중정당, 수권정당의 면모를 찾기 어렵다”고 논평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민주당은 진보 아닌 보수, 국힘은 수구”라고 진단한 바 있는데, 그의 말대로 재배치되는 과정인가. 우리 정치에서 전통적 진보·보수 틀이 깨진 지 오래이기는 하나, ‘이재명 사당’이라 비판받는 민주당을 진정한 진보 정당이라 할 수 없는데 국힘도 건강한 보수 정당이길 포기한다면, 이런 비극이 없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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