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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이슈 시위와 파업

K팝 떼창·응원봉, 축제가 된 시위…먹거리 선결제·나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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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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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1시간 전인 지난 1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는 20만 인파(경찰 비공식 추산)가 운집했다. 경찰·소방에 따르면, 이날 위법 행위로 체포된 시민도, 안전사고도 전혀 없었다. 평화로운 집회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한국인의 시민의식과 축제 같은 ‘K집회’는 또 한 번 주목받았다.

현장에선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의 ‘위플래시’, 로제의 ‘APT’ 등 흥겨운 K팝이 연신 흘렀다. 시민들은 아이돌 응원봉 등 각종 도구를 흔들며 따라불렀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민중가요가 불렸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서울시청 앞에서 대대적인 촛불 집회가 열린 16년 전 광우병 사태 때와는 더더욱 달랐다. 2008년 당시 의무경찰(의경)로 근무했던 박모(37)씨는 이날 탄핵안 통과를 촉구하려고 나왔다. 그는 “16년 전엔 경찰에 침을 뱉거나 발로 방패를 걷어차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축제처럼 집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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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여한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사진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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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나부끼던 깃발에는 ‘전국집에누워있기연합’ ‘족저근막염 연합’ ‘고양이 발바닥 연구회’ 등 해학적인 단체명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개인 등이 집회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글귀도 ‘투쟁’ ‘전진’ 등이 선명했던 기존과 달리, 다양하고 개인적인 내용이었다. 상황에 대한 비판·질타 중심이었던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와 달랐다. 민주주의·삼권분립 등 거대 담론보다 ‘계엄으로부터 내 일상을 지킨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육퇴 후 정신적 평온 쟁취연합’ 깃발을 든 최모(35)씨는 “육퇴(육아 퇴근) 후 쉬어야 하는데 대통령 때문에 깃발을 들고 나왔다”며 “육아로도 힘든데, 평온한 삶이 사라지고 탄핵을 외쳐야 하는 비정상적인 세상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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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위한 선결제 내용이 안내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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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체감 온도가 영하였던 이 날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서로 응원하고 온기를 나눴다. 준비한 핫팩과 간식을 다른 시민에게 건넸다. 또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 등이 현장 인근 카페 등에 선결제해놓은 음료 등을 받아와 추위를 녹이는 시민도 있었다. 김진주(35)씨는 “핫팩에 귤, 에너지바까지 계속 받았다”며 “윤 대통령은 폭력적인 계엄으로 충격을 줬지만, 우리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리게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주변 건물들도 화장실을 개방하는 등 집회 참가자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새치기나 시비 없이 질서정연했다.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고 집회가 끝난 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쓰레기를 비닐봉지나 가방에 넣는 등 주위를 정리했다. 지하철역 등으로 이동할 때도 경찰 등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안전하게 들어갔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이런 집회·시위 문화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한국살이 4년 차 캐나다인 잭 그린버그(25)는 “이전 세대의 희생으로 세운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키려고 용기 낸 한국 시민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인 샤파(24)는 “좋아하는 가수 응원봉을 들고 흥겹게 집회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며 “한국의 이런 시위 문화는 전 세계에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엑스(X)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한국인이 되고 싶다” “K팝에 이어 K집회도 수출하는 거냐” 등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외신도 이런 모습에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BBC는 “2년 전 이태원 참사라는 압사 사고를 겪은 한국은 이번 집회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한국의 시위 문화는) 차세대형 민주주의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MZ세대’가 집회·시위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청년세대가 이번 사태를 보며 ‘스스로를 지키겠다’고 정치적으로 각성하면서 집회·시위 주도 세력의 세대교체가 일어났다”며 “헌신하는 팬덤 문화가 민주주의 위기 극복이라는 목표와 결합해 평화적인 집회·시위가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악이나 폭력을 쓰지 않아도 추운 날씨에 자리를 지키면서 즐겁게 목소리를 내는 행위로 충분히 메시지를 낼 수 있음을 젊은 세대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보람·정세희·이수민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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