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일 사회부장]
8년만에 또 '헌재의 시간' 도래
윤 '계엄 독재' 선택 탄핵 자초
민주당 '적폐청산 시즌2' 곤란
국민통합 '수권정당' 역할 필요
경제· 민생 회복에 총력 나서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다시 탄핵의 시간이 왔다. 8년 만이다. 온 국민의 시선이 헌법재판소로 다시 쏠릴 일이 이렇게 빨리 올 줄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되고 심판대에 올랐다. 그가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2021년 6월 29일 이후 1264일, 대통령이 된 지 950일 만이다. 입만 떼면 ‘법치’를 부르짖던 지도자가 한순간에 헌법을 유린하고 독재의 길을 선택한 결과다.
윤 대통령은 ‘2시간의 계엄’으로 취임식 때 공언한 ‘자유·인권·공정·연대’의 가치를 스스로 짓밟았다. 국민들의 피땀으로 일궈놓은 민주주의의 시계도 45년 전으로 되돌렸다.
윤 대통령의 힘이 거세당하면서 권력의 시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탄핵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무혈입성’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요즘 국회에서 진행 중인 12·3 비상계엄 진상 조사를 위한 상임위원회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계엄군과 국무위원들을 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핏발 선 다그침을 보면 마치 ‘인민재판’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을 주도하고 동조했다면 그게 누구든지 간에 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야당이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점령군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불안하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204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자마자 이 대표는 “1차전의 승리”라고 외쳤다. 자칫 이제는 대중의 힘으로 헌재를 압박하겠다는 말로 비칠 수도 있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지 않은 여당 의원과 ‘탄핵 반대’를 외친 보수 단체들은 모두가 처단돼야 할 ‘적’인가.
8년 전 탄핵 열풍을 타고 권력을 거머쥔 문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적폐청산’을 국정 키워드로 삼았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공직 및 시민사회에서도 국정 농단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이들은 모두 타도 대상으로 내몰렸다. 이후 정치와 사회는 극단의 분열로 치달았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더욱 심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비상계엄은 분명 잘못됐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가뜩이나 힘든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이에 따른 법적 해결의 책임은 이제 수사기관과 헌재를 포함한 법원의 손에 넘어갔다. 그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리라 믿는다.
정치권이 할 일은 우선 사회 분열과 경제 혼란을 막는 것이다. 또 안보의 핵심인 군을 정상화하고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법적·제도적 개선을 고민하는 일이다.
벌써 진보와 보수 단체들은 광화문에 모여 헌재의 탄핵 심판이 나올 때까지 시위를 이어나갈 태세다. 길게는 180일간 이러한 대결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걱정되고 두렵다.
민주당이 진정한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이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로서 책임을 느낀다면 분열을 조장하기보다 통합과 치유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갈등의 조정자로서 국난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계엄 해제안과 1차 탄핵안 투표에 불참하고 2차 탄핵안 투표에서도 반대표를 던져 세 번의 죄를 지은 96명의 여당 의원들은 국민이 기억할 것이다.
이 대표는 전날 탄핵 후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상처 치유에 최선을 다하겠다” “화합의 첫 출발이 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하나다”라고 강조했다. 부디 허언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 정부가 출범한 뒤 2년 반 동안 진행된 4대 개혁을 비롯해 필요한 경제·산업 정책들은 지속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에 필요한 것이라면 ‘거야’인 민주당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불법 계엄은 190명의 의원이 2시간 만에 되돌릴 수 있었지만 한 번 망가진 경제를 회복하려면 2년, 아니 20년도 모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전장에서 적장을 사로잡았다면 그 수하들에게는 아량을 베푸는 장수가 큰 인물로 칭송받았다. 통합과 미래를 위한 리더십이다. 비상계엄에 대한 탄핵과 법적인 판단은 이제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몫이다. 정치권은 국민의 일상을 정상화하고 늪 속으로 빠져가는 경제 회복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한영일 기자 hanul@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