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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강성학 칼럼] 외교(Diplomacy)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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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외교에 관해 고전적인 권위자인 어니스트 사토 경(Sir Ernest Satow)의 정의에 의하면, 외교란 "정부 및 독립국가들 간에 공식적 관계를 수행하는 데 있어 지성과 재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란 간단히 국가 간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 진지하게 말한다면, 외교란 국제적 혼돈으로부터 어떤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 인간들에 의해 채택되고 실행하는 전통적 방법 중 하나이다. 본질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를 수행할 때 외교는 기본적으로 무력 대신에 언어를 사용한다. 외교의 이러한 특징은 분명히 경제적 교류와 군사동맹과 같은 상호 협력적인 일에 적합하다. 그러나 적국과의 외교에서는 대화와 폭력의 사용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사용되는 말의 메시지는 외교적 협상을 통해 목적달성에 실패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교야말로 실제적인 국제관계의 정치, 즉 가장 정확한 의미의 국제정치다.

맥락은 다르지만, 정치와 외교의 목적은 같은 것이다. 즉 정치와 외교는 다 같이 다원적 이익들을 통합하거나 적어도 양립시키려고 한다. 그것도 아니면 어떤 이익을 다른 이익에 우선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치와 외교는 다 같이 3가지의 기본적 행위의 행태, 즉 협력, 조정 그리고 반대의 형태에 의존한다. 국내사회에서처럼 국제사회에서도 이 3가지 선택안이 정치활동의 범위를 규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범위 내에서 외교의 고전적 기능은 보통 대표, 정보 그리고 협상을 포함한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외교관이란 국제기구에 고용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조국을 대표한다. 외교관이란 또 자신이 부임한 국가에 관해서 정보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외교부에서 새어 나오는 정보의 중요성을 선별하고 평가해야 한다. 외교관은 또한 협상을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

그러나 외교와 정치는 그 맥락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정치가란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국민 전체의 복지가 국민 일부의 복지보다 우선시되는 사회 내에서 활동한다. 반면에 외교관이란 거의 전적으로 자국의 배타적 봉사자이며 국가의 이익이 모든 여타의 이익을 능가하는 사회 속에서 활동한다. 그 결과 국제적 의전과 국제사회라는 개념, 그리고 이들의 다른 표현들은 국제관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국가이익의 뒷전으로 밀려난다. 외교활동의 이러한 특징은 정치가들이 국내정치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외교관은 본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입장에 의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주권국가들의 관계 속에서 자국의 주권을 대표하는 외교관은 철저한 적으로부터 아무리 우호적이라도 충성의 대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이르는 외교적 동료들과 관계 속에서 활동한다. 이것 또한 국내정치에선 계급적, 인종적, 지역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범주 내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들과 다른 것이다.

20세기 통신과 수송의 전례 없는 기술혁명은 외교의 범주와 과정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과거에 통신과 수송이 배나 마차 혹은 비둘기에 의존할 때는 대사나 그의 부하들은 본국정부로부터 지령을 받지 않고서 수개월 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상당한 재량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통신과 수송의 놀라운 발전은 대사들의 지위를 크게 감소시켰다. 특히 국가 최고지도자 간 핫라인(hot-line) 외교는 심각한 위기 시에 대사들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다. 더구나 저널리즘과 텔레비전 기술의 혁명은 국가 간 뉴스의 교환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발전은 타국의 청중 앞에서 자국의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외교관의 운신 폭에 급속한 영향을 미쳤다.

전통적 외교의 본질을 변질시킨 또 다른 현상은 정상외교(summit diplomacy)와 닉슨-키신저 시대에 유행한, 이른바 왕복외교(shuttle diplomacy)이다. 정상회담에서 광범위한 합의와 중요한 결정들이 정부의 최고지도자 수준에서 이루어진 다음에 대사와 그의 참모들이 합의 내용을 다듬게 된다. 더욱이 위기 시에 왕복외교는 번거롭고 공식적인 전통적 외교과정에 대한 하나의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안이다. 따라서 이런 외교의 등장은 대사 및 그 참모들의 중요성을 실제로 크게 감소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는 정반대로 우리시대에 외교관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과거에 대사들은 행사 때 국가를 대표하고 위기 시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은 보통 영토와 무역 그리고 다른 분쟁과 관련된 위협이나 요청 또는 요구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기능들이 전통적 외교관의 책임에 추가되었다. 오늘날 대사들은 복잡한 대사관원들의 네트워크를 감독하는데 그들의 임무가 군사적 및 과학적 업무로부터 홍보, 문화, 종교, 노동, 통상, 재정 및 정치적 활동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이다. 그 결과 우리는 외교계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점차 충원하려는 성향을 발견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 시대에도 많은 것이 대사의 능력과 그의 대사관 운영 방식에 달려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16세기의 외교 이론가들에 의하면 최초의 외교관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에서 천사들이었다. 17세기 헨리 우튼 경(Sir Henry Wooten)은 "외교관이란 해외에서 자신의 조국을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파견되는 정직한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그는 외교부에서 해임되었다. 그가 숨겨진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외교문제에 대해서 오늘날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해롤드 니콜슨 경(Sir Harold Nicolson)에 따르면, 일반대중들의 마음속에서도 외교관이란 결코 천사들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정반대의 인상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외교관 개인의 인격적 자질과는 전혀 무관하다. 전통적으로 외교관은 우호적인 땅과 적대적인 땅 사이의 경계선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외교관이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고 또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유서 깊은 '힘의 균형'을 상기한다면 외교관은 그런 행동의 제한을 어쩔 수 없이 발전시켜야 한다. 적의 땅은 분명히 적대적일 것이고 중립적 땅도 언제든 적대적으로 될지도 모른다. 우호적인 영토가 속임수일 수도 있다. 따라서 외교관은 국민의 호민관, 즉 보호자라기보다는 정찰병에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교관은 자신의 공식적 역할수행에서 자신의 해외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고 자국의 외교부 장관이나 국가원수의 이름으로 말한다. 잠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적대적인 영토에서 임무를 맡는 것에 의해 주입된 이 조심성은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에게 의무적인 조심성에 의해서 더욱 강화된다. 이런 행태의 행동이 우호적인 정부 간의 관계에선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행태의 행동은 그곳에서도 쉽게 나타날 수 있으며, 특히 분위기가 덜 정중해질 때는 언제든지 등장한다.

오랜 역사를 통해 국제적 동반자 관계는 눈에 띌 정도로 빈약하고 짧았다. 동반자들 간의 깊은 협력적 기간에도 각국의 외교관들은 본국으로부터 지시를 하달받으며 협력적 관계에 깃들어 있는 공동 목적보다는 각자 자국의 외교부를 위해 일한다. 전시에는 단결에 대한 당연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동맹을 괴롭히는 긴장과 불신은 여전하다. 이처럼 외교관의 지배적 가정은 통일이 아니라 분할이다. 바로 여기에 외교관의 불성실함과 교활함에 대한 명성이 존재한다. 바로 여기에 프랑스의 드골 장군이 외교관이란 국가들의 협력을 위한 지속적 토대를 수립하는 데 헌신적인 진정한 동반자들이라기보다는 조종을 위한 대상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보는 "냉혈적 괴물들"이라고 언급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여기에 외교관은 정치의 갈등적 모델의 규칙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실을 그의 세련된 매력이 감추지 못하는 냉소적 음모자로서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외교관은 외교관계의 네트워크가 비밀 첩보원이나 비밀 활동으로 뒷받침되는 체제 속에서 활동한다. 따라서 때때로 스파이와의 관계, 비밀에의 의존성, 모호한 표현의 구사, 그리고 자기정부의 훈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는 신분 등이 모두 함께 결합하여 외교 및 외교관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외교의 비밀성과 여기서 파생되는 속임수의 개연성이 외교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자아내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밀성은 적어도 2가지 점에서 속임수의 함축적 의미를 어쩔 수 없이 수반한다.

하나는 소수 특권층에게만 정보의 보유가 제한된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비밀에 의존함으로써 어떤 것을 숨기고 있다는 의구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밀성은 의도적인 거짓의 가장이나 의도적 거짓과 같은 것으로 쉽게 간주한다. 왜냐하면 비밀스러운 목적은 외교관들이 사적인 경우와 공적인 경우에 서로 다른 말을 할 수 있게 허용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특히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처하는 국가는 국민들이 모르는 비밀을 유지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외교의 비밀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모든 비밀을 공개한다면 그런 국가는 자국의 적국들에까지 국가의 기밀을 동시에 노출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그렇게 기밀이 노출되면 그 국가는 상대방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공개협상은 협상에 임하는 입장의 경직성을 낳게 된다. 사적으로 외교관은 상대방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혀 다른 문제에서 실제로 의도하지 않는 요구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한 종류의 정치나 협상은 공개적으로는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구속력이 없는 탐색적 토론이나 은밀하게 상대방을 떠보는 절차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시험적인 기술들이 공개외교에서는 효율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국민은 또한 이런 모든 은밀성의 절차적 측면들 외에도 우리는 동시에 군사, 과학, 경제, 그리고 심지어 정치적 비밀을 보호하는 실질적 기능들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외교적 비밀의 지속적 정당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비밀은 속임수와의 연계성 때문에 하나의 악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악인 적(국)이 존재하는 한 필요악이다.

해롤드 니콜슨 경은 외교관의 제1차적 덕목으로 진실성(truthfulness)을 지목한다. 만일 어느 외교관이 중대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는 어디에서나 기피인물(persona-non-grata)로 낙인찍혀 외교계에서 결국 추방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대사관은 빈번히 정보작전의 비밀기지로 봉사한다. 이해의 갈등이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에서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 냄으로써, 다시 말해, 절충을 달성함으로써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외교관의 최고 소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지만 외교관의 성공 여부는 그의 진실성에 달려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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