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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지평선] ‘법꾸라지’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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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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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든 수사든,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탄핵 표결 전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놀라운 자기변호 대국민 담화를 접하면서 이젠 대통령이라는 사람까지 ‘법꾸라지’ 꼴을 보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법꾸라지는 ‘법률’과 ‘미꾸라지’가 합성된 신조어다. ‘인맥이나 정보, 지식 등과 결합한 법률 권력 및 기술을 이용해 법에 의한 처벌을 미꾸라지처럼 능수능란하게 피해 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법꾸라지엔 부가적 의미가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고 본다.

▦ 법꾸라지들이 내세우는 행위의 정당성 기준은 늘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선에 맞춰져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법망만 피하려는 사고와 행태에 매몰돼서 그런지 공중이 마땅히 공유하고 지키려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의감이나 도덕감은 되레 비정상적으로 퇴화하는 듯하다. 따라서 법꾸라지의 의미엔 ‘법은 잘 알지만, 그 이상의 정의감과 도덕감은 상실한 괴물 같은 인간’이 부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담화에서도 그런 인간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 그의 담화는 지난 비상계엄이 오직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으며, 내란은 결코 아니라는 항변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항변을 뒷받침하기 위해 야당의 지독한 국정 발목잡기 등을 동기로 내세웠고, 비상계엄이 경고용에 불과했다는 정황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놨다. 그는 “국민께 불안과 불편, 놀라움을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언급조차 계엄으로 실질적 피해는 거의 없지 않았냐는 교묘한 법꾸라지 레토릭이라고 본다.

▦ 윤 대통령의 법꾸라지 주장은 국회의 탄핵소추 가결로 결연히 배척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 말고도 우리 정치판은 법꾸라지 전성시대다. 당장 대권 청신호가 켜진 이재명 민주당 대표만 해도, 법꾸라지로 여기며 마땅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절반에 육박한다. 법꾸라지에게 우롱당한다는 모욕감을 더 이상 국민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는 차기 대선에 앞서 수많은 불법 혐의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법꾸라지 변론이 아님을 법원 최종 판결로 소명할 수 있도록 재판 진행을 서둘러주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실장 직대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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