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지난달 26일 기획재정부 내부망인 ‘공감소통’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청년인턴’이란 제목의 한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는 “통제가 어려운 인턴들 관리하는 (기재부) 청년정책과 분들부터 그런 인턴을 배정받은 과까지 모두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물론 열심히 일하는 인턴도 있지만, 솔직히 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예산 낭비라는 생각만 든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어 “내년에도 1년 내내 인턴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너무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 벽면의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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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댓글 수십개가 따라붙었습니다. 이에 동의하는 한 직원은 “몇 개월도 안 하고 나갈 사람에게 어떤 일을 줄 수 있겠나”라며 “뭐라도 시키려면 가르쳐야 하는데, 조금 이따 나가는 사람에게 일을 가르쳐야 하는 직원은 무슨 죄인가”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들은 “정책은 만들었고 맡은 과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 “시킬 일이 없거나 일을 시키는 게 오히려 더 일 같이 느껴지는 게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하는 일이 ‘출근-산책-점심-산책-퇴근’인 인턴들도 많다”며 “(정부부처인 만큼) 자를 수 있는 권한 따위 없는 걸 아니, 대놓고 ‘월루’(월급루팡·직무는 제대로 안 하면서 월급을 축내는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 한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급여 문제도 지적됐습니다. “9급 공무원보다 급여가 많다”는 물론, “7급보다도 급여가 높다.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는 제도다”라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5월 말 게시된 ‘기획재정부 2024년 하반기 청년인턴 채용 공고’를 보니, 보수는 ‘월 206만740원(시간 외 근무수당 별도 지급)’으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올해 공무원 봉급표를 보니, 7급 1호봉(월 205만600원)·8급 3호봉(월 201만9800원)·9급 5호봉(월 200만6700원)보다 보수가 높게 책정돼 있네요.
반면 옹호하는 여론도 많았습니다. 한 직원은 “저희 과 청년인턴은 열심히 한다”며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말라”고 글쓴이를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들도 “우리 과 인턴도 일을 많이, 잘해서 과에서 1인분의 일을 하고 있다. 당장 채용하고 싶은 정도”, “오히려 과에서 활용을 못 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인턴분들에게 기운 내라고, 힘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다.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는 애틋한 댓글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 논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라네요.
기재부에서 청년인턴이 갑자기 시끄러워진 이유는 뭘까요. 사기업은 물론 공공기관 등에서 인턴제는 흔하지만, 중앙부처에서 이런 청년인턴 제도를 도입한 지는 2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이 우선 이유로 꼽힙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2년 10월 “모든 정책을 추진하는 데 미래세대(청년)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듬해 2월 고용노동부를 시작으로 중앙부처 청년인턴 모집이 시작됐습니다. 반기별로 3개월 혹은 6개월짜리 단기 인턴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에만 정부부처가 채용한 청년인턴의 수는 1237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만큼, 실제 이를 운용해 본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정책의 실효성’을 따져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단 기재부만의 목소리일까요. “우리 부 청년보좌역이나 청년인턴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다른 부처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청년인턴제의 실효성이나 보완 방법에 관한 논쟁은 한 부처의 익명 ‘다툼’으로 치부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정책에 책임 있는 정부도 이제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문제입니다. 처우의 적정성도 논쟁거리지만, 그보다 먼저 고민돼야 할 지점은 이 청년들이 해당 정책을 통해 무엇을 얻어가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지가 아닐까요.
인턴이 필요한 부서를 지원받아 딱 필요한 만큼만 채용하자는 현업 직원들의 사소한 보완 의견부터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추후 업적으로 자랑할 만한 ‘숫자’를 채우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세종=박소정 기자(so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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