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군인의 딸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선결제했다. 사진 유튜브 채널 연합뉴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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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됐던 군인의 딸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후원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카페 남대문커피 여의도점은 지난 1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프랑스에 계신 교포분께서 12월 14일 토요일 촛불 시위에 참석하는 시민분들을 위해 1000잔의 커피를 선결제해주셨다는 소식을 전달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선을 통해 후원하시는 이유를 듣게 됐다"며 "그 마음이 너무 귀하시고 가슴에 울림이 가득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당당한 외침과 손길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해당 카페에 음료 1000잔을 선결제한 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정보병의 딸이자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는 큐레이터 그리다(활동명·39)씨다.
그리다씨는 같은 날 엑스(X)에 "아침이슬로 다시 만난 세계: 어느 계엄군 딸의 고백문 그리고 천 잔의 커피"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리다씨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정보병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엄마는 꿈도 많고 공부까지 잘했지만 외할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며 엄마의 길을 막았다"며 "그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능력을 인정해주는 군대뿐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차별과 억압, 꿈과 자유가 이상하게 뒤엉킨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어느 날, 엄마는 광주로 가 그곳에 모인 빨갱이들을 척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하지만 엄마가 그 도시에서 본 것은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정보병이었던 엄마는 거리로 나가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들려오는 함성과 총성, 찢어질 듯한 비명과 통곡, 끌려오는 무고한 사람들의 부서진 몸과 얼굴이 지옥처럼 엄마를 짓눌렀다"고 했다.
그리다씨는 올여름 두 아이를 데리고 찾은 한국의 집에서 엄마의 군대 시절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며 "그날 엄마가 들려준 광주의 이야기는 아직도 엄마의 주름진 손마디를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어릴 적 엄마는 양희은의 '아침이슬'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며 "광주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미안함,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곁에 있지 못했던 죄책감, 진실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라고 돌아봤다.
그리다씨는 "지금도 긴 밤을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이슬처럼, 음울한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진주 빛을 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며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자들이 이기지 않기를, 더 이상 쓸쓸하거나 외로운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혁명의 땅 프랑스에서 그 기운을 담아 천 잔의 커피를 보낸다"며 "따듯한 커피에 여의도에 있지 못하는 아쉬움과 그래서 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낸다"고 말했다.
그리다씨의 사연이 소셜미디어(SNS)와 언론 보도를 통해 화제가 되자 그는 13일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 일인데 수많은 댓글로 제가 오히려 큰 선물을 받는다"며 "원치 않게 역사의 반대편에 계셨던 어머니의 광주에 대한 업보는 제가 평생을 두고 사죄드리고 갚겠다"고 밝혔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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