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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앵커칼럼 오늘] 염치없는 매화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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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삼 염치로 삼승 버선에 볼 받아 달람나…"

싸돌아다니던 사내가, 해진 버선을 덧대 기워 달라고 합니다. 염치없는 사내를 원망하다 못해 매화한테 넋두리합니다.

"좋구나 매화로다…"

임금의 용변은 매우(梅雨) 라고 불렀습니다. 큰 것은 매화, 작은 것은 비로 미화했지요. 임금이 방에서 용무를 보는 이동식 변기도, 향기롭게 '매화틀'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나온 속담이지요.

'싸고 매화타령 한다.'

제가 한 짓은 금세 잊어 버리고 비위 좋게 떠든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동물이 인간보다 기억력이 좋을 수 있습니다. 호두만한 뇌를 지닌 새들이 수만 킬로미터 하늘 길을 어김없이 오갑니다. 뇌가 없는 상자해파리도 시신경으로 장애물을 기억해 뒀다가 피해 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하든 수사하든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습니다. 2선 퇴진 약속을 닷새 만에 뒤집었습니다. 하야든 조기 퇴진이든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은 듯한 7천2백 자 30분 강변을 쏟아냈습니다.

듣는 내내 무언가에 호되게 얹힌 듯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반헌법 비상계엄을 도리어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려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국회 병력 투입은 질서 유지를 위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끌어내라, 체포하라'고 했다는 증언들은 못 들은 척했습니다.

모든 책임을 야당으로 돌렸습니다.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멈추도록 경고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총선에서 야당을 '거대 입법 권력' 으로 키워준 장본인이 누구였습니까. 하는 말과 내리는 결정마다 민심을 돌려세운 당사자는 또 누구였나요.

열흘 전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일도 까맣게 잊은 듯 요구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모두 하나가 되어 달라."

모든 그릇에는 저마다 어울리는 용도가 있습니다. 종지는 간장을, 사발은 국을, 장독은 된장을 담아야 제구실을 합니다.

하지만 그릇보다 과분한 자리에 올라 두루 근심과 고통을 끼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 '사람', 지금은 '국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12월 12일 앵커칼럼 오늘 '염치없는 매화타령' 이었습니다.

'매화틀' 국립고궁박물관 www.gogung.go.kr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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