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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강준만의 화이부동]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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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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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윤석열이 저지른 자멸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의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간 ‘김건희 방탄용’이 가장 많이 거론되었지만, 그건 목표일 뿐 ‘자멸’의 이유를 설명하진 못한다. 윤석열의 성격에서 이유를 찾으려는 분석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

“윤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 성격이 화를 부른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 (그는) ‘중요한 결정을 즉흥적으로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여권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확 계엄 해버릴까’ 하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중앙일보 기자 허진·박태인)

“윤 대통령은 이성적이지 않고 극히 감정적이며, 사려 깊지 않고 충동적이다. 인내해서 얻는다는 지혜를 모르고 즉흥적·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감(感)이 거의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조선일보 주필 양상훈)

한겨레 선임기자 성한용은 12월5일자 칼럼에서 이 두 가지 분석을 긍정하면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의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에 있는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윤석열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냐는 자신의 질문에 국민의힘 친윤석열계 의원이 내놓은 다음 설명이 상당히 진실에 가깝다고 했다. “여러 가지다. 야당도 그렇고 한동훈도 짜증나게 하고. 열 받으니까 그런 거지.”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도 12월6일자 칼럼에서 이런 진단을 내렸다. “필자 취재에 따르면 계엄은 순전히 윤 대통령 본인의 흥분 격노에 의해 돌발적으로 결정됐다. (…) 즉흥적, 감정적이며 고집대로 밀어붙이는 윤 대통령의 성정과 예스맨 충성파만 선호하는 인사 스타일이 합쳐져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다.”

모두 다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그간 언론에서 ‘격노’라는 단어로 자주 표현된 윤석열의 ‘욱’하는 다혈질 기질을 추가해도 무방하겠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에 다혈질 기질을 갖고 있다고 해서 남의 말을 듣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데 윤석열은 오래전부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성한용의 10월26일자 칼럼에 따르면, 검사 시절부터 어울린 동갑내기 술친구들 중 성품이 맑은 어느 친구가 윤석열에게 “너는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윤석열이 이유를 물었더니, 그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나. “너는 남의 말을 안 듣잖냐. 그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

주변 고언 봉쇄에 둔감하기까지

윤석열은 남의 말을 안 들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청개구리 본성’마저 갖고 있었다.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은 12월3일자 칼럼에서 “윤 대통령의 청개구리 본성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기자들에게도 꽤 알려진 얘기다. 참모들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하더라도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 윤 대통령은 일단 반대로 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총선 직전의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 아닐까. ‘(의대 정원 확대 규모)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다’로 대표되는 그 유명한 ‘51분, 1만4000자 담화’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했던 여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이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그의 선택은 끝내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리고 열흘 뒤 받아든 총선 성적표는 보나마나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남의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꼭 그 말을 한 사람에게 격노할 필요는 없지만, 윤석열은 김건희 문제에 대해 고언을 하는 사람에겐 격노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관계 단절도 불사했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국정운영 전 분야에 걸쳐 참모·측근·지인의 고언을 원천봉쇄함으로써 자멸로 가는 고속도로를 탄 셈이었다.

2023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사우디 리야드가 119개국(72%) 득표로 29표(득표율 18%)를 얻는 데 그친 부산을 누르고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된 사건이 대표적 예다. 국내 홍보를 어찌나 요란스럽게 했던지 부산이 이길 걸로 생각한 국민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진 것도 아니고 ‘119 대 29’의 참패였으니, 이는 윤 정권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킬 정도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대통령과 나라 잘되라는 충정에서 고언을 하는 사람에게 날벼락과 더불어 큰 불이익을 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하니, 누가 감히 진실이나 바른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윤석열은 이미 이때부터 망가질 대로 망가진 폭군과 다를 바 없었다. 폭군은 자기 안전을 위해 눈치는 빠른 법인데, 윤석열에겐 그마저 없었다. 그는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둔감했다.

2022년 3월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사회분야 방송토론회의 한 장면을 보자. 이날은 내가 윤석열에 대해 감탄을 했던 날이다. ‘아 저렇게 둔감할 수가!’ 상식을 초월하는 둔감이었다. 윤석열은 2월27일 유세에서 “정부가 성인지감수성 예산이란 걸 30조 썼는데, 그중 일부만 떼어내도 북한 핵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고 했다. 성인지예산은 액수로 존재하는 실질 예산이 아니라, 예산이 남성·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정하는 기준·과정이라는 기본적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실언이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3월2일이기에 그 실언을 낳은 무지가 교정돼 있을 걸로 생각했지만, 윤석열은 토론 과정에서 “그런 예산을 조금만 지출 구조조정해도 대공 방어망 구축에 쓸 수 있다”고 답하는 등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어 저건 무슨 배짱이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그건 ‘배짱’이라기보다는 못 말리는 ‘둔감’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이함이나 게으름도 하나의 답

좋게 포장해서 그렇다는 것일 뿐, 그건 흔히 하는 말로 ‘엉터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인 특성이다. 사람이 왜 그러지? 이 의문은 윤석열 대선캠프 정책총괄지원실장이었던 신용한의 언론 인터뷰(주간경향, 2024년 11월9일) 기사를 읽으면서 풀렸다. 윤석열은 회의 자리에서 한 4~5분은 듣지만, 곧 지루해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 좌중을 사로잡기 일쑤였는데, 이걸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주말 같은 때, 토요일 오후가 되면 긴장이 풀린다. 그러면 이야기가 3시간씩 간다. 속된 말로 만담꾼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또 재미있다. 인간적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이 있다면 오전 10시에 들어가야 한다. 조금 있으면 기자회견이니 예를 들어 GTX 연장 지도를 놓고 막 설명해야 한다. 한 5분 듣다가 또 이야기한다. 설명에 집중하지 않는다. 기자회견 10분 남겨놓고 그때 가서야 요약 페이퍼만 대충 보는 거다.”

윤석열이 평소의 ‘둔감 모드’에서 ‘민감 모드’로 급전환하는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 강한 보복 의지를 발휘할 때였다. 영화 <대부 3>에서 대부 마이클 콜레오네가 남긴 말은 윤석열이 꼭 명심했어야 할 교훈이다.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마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12·3 비상계엄의 운명은 윤석열이 “피를 토하는 심정” “범죄자 집단의 소굴”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 “패악질을 일삼아온 망국의 원흉” 등과 같은 표현을 썼을 때에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한 적개심으로 인해 흐려질 대로 흐려진 판단력을 잘 보여준 말이었으니 말이다.

“성격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윤석열은 노예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넘어서, 현 체제는 대통령의 성격이나 기질에 의해 국가와 국민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는 점이다. 이에 대한 성찰을 건너뛰면서 윤석열 개인에게 아무리 비난과 저주와 조롱을 퍼부어봐야 달라질 건 없다.

그 성찰은 역사적 임시변통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형 대통령제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고, 권력에 대한 맹종과 아첨에 길들여진 습속이나 관행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그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늘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다. 바로 이런 안이함이나 게으름도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란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경향신문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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