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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타이밍 놓친 인텔의 실패…단가만 따지며 'AI 투자'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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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의 인텔 캠퍼스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팻 겔싱어 인텔 CEO와 반도체 산업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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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반도체 생산’에 올인했던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전격 사임했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해 온 CEO가 이사회와 갈등을 빚다가 사실상 해고됐다는 외신 보도다. ‘세계 최강대국의 자본과 국력으로 첨단 제조업을 회복한다’는 미국 정부의 계획에서 인텔이 이탈할 가능성도 커졌다.



인텔, ‘파운드리보다 CPU가 최우선’



지난 2일(현지시간) 인텔은 팻 겔싱어 CEO가 1일자로 은퇴하고 이사회에서도 물러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지난주 겔싱어 CEO가 회사의 시장 점유율 회복을 놓고 이사회와 갈등을 빚다가 ‘은퇴 혹은 해고’를 요구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사는 ‘인텔 프로덕트’ 그룹의 신설도 발표했다. 중앙처리장치(CPU)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네트워크 엣지 등 인텔의 제품 사업을 아우르는 조직이다. 파운드리에 투자하다가 본업인 CPU 경쟁력마저 위협받는 처지로 몰리자, 주력 제품부터 먼저 챙기겠다는 메시지다. 인텔이 향후 파운드리 분사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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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 챈들러의 인텔 공장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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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통 CEO가 기술 놓쳐, 기술통 CEO가 곳간 비워



인텔의 실패는 기술경영이 부재한 기업의 실패 사례다. CPU의 절대 강자였던 인텔은 지난 15년간 ‘모바일’과 ‘AI’라는 굵직한 기술 흐름을 연이어 놓쳤다. 애플 아이폰용 모바일 칩 제조를 하려다 말았고,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투자할 기회를 걷어찼으며,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도입을 미뤘다. 이유는 주로 단가와 비용이었다. 아이폰 칩 물량은 TSMC가, 오픈AI 투자 기회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초기 EUV 물량은 삼성전자와 TSMC가 가져갔다. 10년간 재무 전문가 출신 CEO들이 주가 부양에 몰입하는 동안 인텔의 10나노(㎚·1㎚=10억 분의 1m) 공정 도입은 지연됐다.

인텔은 2021년 정통 엔지니어인 팻 겔싱어 CEO를 임명해 상황을 뒤집으려 했다. 겔싱어 CEO는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 인텔에서, 남의 회사 칩을 위탁 제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려 했다. 단숨에 1.8나노로 직행해 TSMC·삼성전자의 첨단 파운드리 점유율을 뺏겠다 했고, 이를 위해 대당 5000억원에 달하는 ASML의 차세대 장비 High-NA EUV도 가장 먼저 들였다. 미국은 물론 유럽 정부의 반도체법(칩스법) 보조금을 받아 미국·독일·폴란드에 대규모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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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그러나 지난 3년간의 ‘제조 부활’ 시도는 인텔에 500억 달러(약 70조원)의 부채와 ‘인력 15% 해고’를 안겼다. 인텔 파운드리의 제조 기술력과 서비스가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 탓이다. ‘기술통 CEO’를 앉혔지만, 뒤처진 기술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전 세계에 공사판만 벌인 결과 곳간마저 비어버렸다. 후임 CEO군을 키우지 못한 인텔은 당분간 대리 체제로 운영된다.



‘미국산 반도체’ 인텔의 빈자리는 누가 채우나



바이든 미 행정부는 미국 내 제조업을 되살리고 첨단 반도체를 직접 생산한다는 계획의 성취를 보지 못한 채 임기를 끝내게 됐다. 지난주 미 정부는 기존보다 6억 달러 깎인 79억 달러(약 11조원)의 보조금을 인텔에 지급하기로 확정했고, 미국 군용 반도체 생산용 별도 보조금 30억 달러(약 4조2000억원)는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 미국 오하이오 주 인텔 파운드리 공장은 2020년대 말까지 완공 계획이 미뤄졌다.

예고된 실패였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1000억 달러(약 140조원)를 부어도 미국 반도체 공급망 재건은 어렵다”라고 공공연히 말했고, 지난해까지 인텔 파운드리 기술고문을 맡았던 TSMC R&D 이사 출신 양광레이 교수도 중앙일보에 “미국 젊은 세대는 반도체를 낡은 산업으로 여기며 제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라며 인텔 파운드리의 성공 가능성을 10% 미만으로 봤다. 첨단 제조업의 필수 요소인 ‘촘촘한 공급망’과 ‘우수한 숙련 인력’은 단기간에 얻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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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2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의 TSMC 공장의 장비 반입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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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반도체’를 실행할 인텔의 대안으로 TSMC와 삼성전자가 남았다. TSMC는 66억 달러(약 9조2000억원)의 미 정부 보조금을 확정받았고, 애리조나 공장은 시험 가동을 시작했다. CEO가 직접 “미국 공장 수율이 높다”고 자랑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제조 역량을 믿지 않는 TSMC는 애리조나 직원(2200명)의 절반을 대만에서 데려와 채웠다가 갈등에 처했다. TSMC 공장의 전·현직 미국인 직원들은 “회사가 미국인 직원을 따돌리고 차별한다”며 지난 8월 소송을 냈다.

삼성전자는 지난주 인사에서 전영현 반도체(DS)부문장이 메모리 사업부장까지 맡아 ‘메모리 경쟁력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대형고객 확보가 급선무인 파운드리 사업부는 미국 빅테크와 관계가 좋은 한진만 사장이 새로 맡았다. 삼성 파운드리는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대신 바이든 정부가 주겠다고 약속한 64억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지 못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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