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
지난달 8일 김제의 특장차 생산업체 HR E&I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고(故) 강태완 씨의 장례가 지금까지 치러지지 못하고 있다. 유족 측은 회사 대표에게 '공개 사과문 게시와 합의서에 사과 명시,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유족 대리인 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으나 응답이 없는 상태다. HR E&I는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산업재해조사표에서 사고의 원인을 태완 씨의 과실로 돌리고 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11월 28일 자 '곳곳에 위험 깔아놓고 '죽은 강태완씨 탓'…회사는 사과를 거부했다')
태완 씨의 죽음은 한국에서 유령처럼 살아가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환기했다. 그는 다섯 살 때 한국으로 이주해 군포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으나, 어머니가 미등록 이주민이었기에 그도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아야 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자진 출국과 재입국 과정을 거쳐 26년 만에 지역특화형 비자를 받아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입사 8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7월 7일 자 '외국인으로 돌아왔다…한국인 소멸지역서 신분 증명하며 '보통의 삶'')
2021년 출간된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창비 펴냄)은 미등록 이주아동 다섯 명과 그들의 부모 및 활동가들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참여자 중 일부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그중 '인화'라는 이름으로 참여했던 사람이 바로 태완 씨의 어머니다.
어떻게 미등록 이주아동이 되는가. 부모 모두 이주민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은 보통 부모 국적국의 재외공관에서 출생등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체류기간을 초과하여 미등록 이주민이 된 경우,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녀의 출생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는 출생 당시에는 체류자격이 있었으나, 부모가 체류기간을 초과하면서 함께 미등록 이주민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 피신한 난민이나 한국 내 본국 재외공관이 없는 국가 출신 이주민의 경우에도 자녀의 출생등록이 사실상 어렵다.
이렇듯 미등록 이주아동이 되는 상황은 아동 본인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출생등록될 권리'를 박탈당함으로써 각종 사회보험과 사회보장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높은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영유아 예방접종의 경우 보건소에서 임시관리번호를 발급받아 접종할 수 있지만 현장 담당자조차 이 규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이주민들이 이런 정보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정부의 의료비지원사업도 예산 부족으로 '아프려면 연초에 아파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결국 이러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건강권 보장 공백을 일부라도 메우는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국민' 중심의 보육⋅교육 지원 제도에서도 배제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고유식별번호를 부여하면 원칙적으로 미등록 이주아동도 어린이집과 공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재정 부담, 시스템 미비, 현장학습 안전보험 가입 불가 등을 이유로 이들의 어린이집과 학교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아동들 또한 경제적 부담과 신분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영유아기나 아동기부터 한국에서 자란 미등록 이주아동은 선주민과 유사한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본인의 미등록 체류자격을 알게 된 후에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며, 동시에 단속과 강제 퇴거에 대한 불안 속에서 아동⋅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 동안 이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그간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당사자들과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법무부는 2021년 4월,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출생 요건, 체류 기간, 공교육 이수, 부모 범칙금 납부 등 대상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제기됐다. 법무부는 2022년 1월 대상 조건을 완화한 개선안을 발표했으나 이마저도 2025년 3월 31일까지로 신청기간이 제한된 한시적 대책에 그쳤다. 현재 시민사회는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대책의 제도화를 촉구하고 있다.
'미등록' 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통계 부재는 곧 필요한 지원 서비스의 부재로 직결된다. 출생등록이나 외국인 등록을 하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아동이 약 2만 명으로 추정되는 상황은, 다문화가정의 출산을 축하하는 지역 신문의 보도와 대비되어 씁쓸함을 자아낸다. 정부는 인구 감소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이주아동을 '유령'으로 만드는 이민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을 보면 '자아분열'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체류자격이 없는 아동들이 유령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출생등록될 권리'부터 되돌려줘야 한다. 1991년 한국이 비준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 제2항에 따르면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하며,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진다'. 이 협약은 또한 아동의 건강과 의료에 관한 권리(제24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권리(제26조), 교육을 받을 권리(제28조)를 보장하며, 이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제라도 방치된 이주아동의 권리를 돌려주어야 하지만, 이미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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