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1 (일)

술자리 잦은 연말, 발가락은 울고 싶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바늘로 찌르는 고통 ‘통풍’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덧 연말이 가까워오며 늘어난 술자리에서 연일 과음한 직장인 황모씨(43)는 아침에 일어나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평소 통풍 때문에 조금만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 왼쪽 엄지발가락 관절이 시큰거리다 결국 붓고 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통풍 발작’을 경험하곤 했는데, 이제 오른쪽 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약을 처방받으려 병원을 찾은 황씨는 “술자리가 잦냐”는 의사의 물음에 “맥주는 안 마셨다”고 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술은 어느 종류든 통풍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황씨는 “의사에게서 통풍이 호전되려면 체중도 줄이는 것이 좋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과음과 과식은 누구에게나 좋지 않지만 특히 통풍 환자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송년회 같은 명목으로 술자리가 잦아지기 쉬운 연말은 더더욱 주의해야 할 시기다. 기름진 음식과 과음이 통풍의 악화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전상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통풍이 있으면 특히 요즘같이 찬 바람이 부는 겨울철 혈액 속 요산 침착이 활성화되면서 염증이 심해지고 증상이 더 악화되기 쉽다”며 “초기에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만성 관절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혈액 내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 결정이 관절 주위 조직을 중심으로 쌓여 생기는 통풍은 극심한 통증을 부른다. 요산은 음식에 들어있는 푸린 성분이 대사된 뒤 생기는 최종 분해 산물로, 주로 발가락과 손가락, 발목 등 말단 부위에서 결정체를 이루며 축적돼 염증을 유발한다. 통풍이라는 병명도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으로, 영어 이름 ‘gout’ 역시 라틴어의 ‘바늘(gutta)’에서 유래된 것처럼 바늘로 찌르듯이 아픈 증상을 잘 나타낸다.

관절 주위 쌓인 요산염 결정이 원인
발가락·손가락 등 말단 부위 발병
기름진 음식·과음 증상 악화시켜
초기 치료 방치 땐 만성 관절염으로

맥주가 주범? 모든 알코올이 위험
물 자주 마시며 유산소운동 해야
증상 땐 약물치료 꾸준히 병행을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통풍으로 진료받은 인원은 53만5100명에 달해 2019년 46만2279명 대비 15.8% 늘었다. 성별로는 2023년 기준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약 12배 많았다.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단백질과 알코올 섭취가 많고, 남성은 콩팥의 요산 제거 능력이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 반면 여성은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월경이 끝나기 전까지 비교적 요산을 배출하는 능력이 유지되는 데 기인한다. 특히 비만한 남성이라면 몸 안에서 요산 생성이 늘어나기 쉬운 상태여서 더욱 위험도가 높다.

최근에는 젊은 연령대의 남성에서 통풍이 가장 많이 증가하는 추세가 확인된다. 통풍 환자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주된 원인으로는 식습관 변화가 꼽힌다. 흔히 맥주가 통풍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지만 알코올이 들어간 모든 종류의 술은 통풍의 위험을 높인다. 알코올이 콩팥에서 요산 배설을 억제해 혈중 요산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맥주는 효모, 보리 등 푸린 함량이 높은 성분이 들어가 다른 술보다 좀 더 위험할 뿐이다. 알코올 외에도 가공식품·음료에 많이 들어가는 액상과당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과당 역시 통풍 위험을 크게 높인다. 특히 액상과당이 많이 함유된 음료를 물 대신 자주 마시면 체내 요산 농도를 높여 통풍 발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송란 강동경희대병원 관절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고칼로리 음식이나 과당이 많이 첨가된 탄산음료, 주스 등의 섭취도 요산을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젊은 연령층에서 꾸준히 과체중·비만 인구가 증가하는 비율과 통풍 환자 증가 비율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젊은 나이에 통풍이 발병하면 유병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통풍 때문에 생긴 관절염은 시기와 증상에 따라 급성기, 간헐기, 만성기로 나뉜다. 급성기에는 하루이틀 만에 관절이 붓고 붉어지며 뜨끈뜨끈해지는 증상과 함께 심한 통증이 동반된다. 이런 증상은 초기 며칠 사이에 저절로 좋아지기도 하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통증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급성 관절염이 한번 나타나고 나면 점차 발생 간격이 짧아지면서 반복되는데 이 단계를 간헐기라고 한다. 이후에는 관절 주위에 장시간 쌓인 요산 결정이 통풍 결절로 형성되는 만성기까지 진행될 수 있다. 만성기에 이르면 통풍 결절이 툭 튀어나오는 모양으로 형성돼 미관상 좋지 않을뿐더러 신발을 신는 것조차 불편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관절의 변형까지 일으키고 신장 기능 또한 떨어뜨리며 심뇌혈관 질환의 발생률 또한 높일 만큼 후폭풍이 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빠른 치료다. 조기에 치료할 경우 통풍도 충분히 호전이 가능하다. 가장 기초적인 치료법은 약물치료다. 요산이 덜 만들어지거나 요산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돕는 약을 통해 체내 요산 수치를 조절할 수 있다. 요산은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도 매일 복용해야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평생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수록 신장 기능이 감소해 요산 배출 능력이 떨어지면 합병증 발생률도 높아지므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평소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식습관 관리를 위해 액상과당이나 알코올이 들어간 식음료 외에도 동물의 내장이나 고기·뼈를 우려낸 국물,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 등 푸린이 과도하게 포함된 식단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 유제품과 채소, 달걀, 해조류 등을 중심으로 섭취하면 통풍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물을 자주 마시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기본적인 실천도 중요하다. 달리기, 등산, 수영 등 적당히 땀을 흘릴 수 있는 유산소운동은 체중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권장하며, 이때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혈중 요산 농도가 높아지는 것을 막고 요산을 소변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상현 교수는 “통풍은 보통 통증이 있을 때만 치료하고 꾸준히 치료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치명적인 합병증까지 초래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도 식단관리와 함께 요산 수치를 낮추는 꾸준한 약물치료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짧게 살고 천천히 죽는 ‘옷의 생애’를 게임으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