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현실주의를 되새기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외교(국제관계. international relations)에서 현실주의라 하여 어디 다를 게 있겠습니까? 현실정치(realpolitik)의 본질을 연장하면 그뿐입니다. 이념이 아니라 실질 목적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며 성취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성취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판별합니다. 무엇이 정당하냐 않으냐도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국리민복에 매달려 그것을 얻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하는 모든 '정치'가 '외교'라는 사실을 암송하는 데에 이만한 적기도 없을 줄 압니다.
맞습니다. 실사구시라 해도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잠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내려다보면 더 또렷해집니다. 19세기 중엽 두 차례 영국 총리를 지낸 팔머스턴 경(Henry John Temple)은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습니다. 이익만이 영원할 뿐입니다". 당대 세계 최강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 그는 덧붙입니다.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 의무"라고 말입니다. 『군주론』의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보탭니다.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행해지는가에 매달려야 한다고요. 좋은 의미이건 나쁜 의미이건 근대 현실주의 정치학의 시조라는 타이틀은 그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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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념의 잣대로 가늠하면 트럼프(미국)와 김정은(북한)은 물과 기름이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둘은, 아니 어느 둘이건 그 이상이건 간에 한결같은 관계라는 것은 없음을 현실주의는 귀띔합니다. 이 대목에서 외교 달인 헨리 키신저의 『외교(Diplomacy)』 2장(경첩:시어도어 루스벨트 혹은 우드로 윌슨)이 펼친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901∼1909년 재임)의 흥미진진한 서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키신저는 테디로 불린 루스벨트를 "전 세계가 미국의 영향력을 느끼게 하고 국익이라는 개념 측면에서 미국을 세계와 연계시키는 것이 미국의 의무라고 최초로 주장한 대통령"이라고 규정합니다. 루스벨트의 말도 옮깁니다. "나는 몽상적인 평화 조약, 불가능한 약속, 실효적인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모든 종류의 서류 뭉치 따위를 신뢰하는 윌슨-브라이언의 태도가 너무 싫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이자 대통령 퇴임 뒤인 1914년 10월 쓴 편지에서 윌슨 대통령과 윌리엄 J. 브라이언 국무장관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재임 시기 테디는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집권기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제의 대한제국 지배권이 사실상 교차 승인되기도 했습니다.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무장한 트럼프. 노벨평화상에 관심이 있다는 분석도 끊이지 않습니다. 과연 그는 무엇을 상상하고 있는 것일까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HENRY KISSINGER, DIPLOMACY, SIMON & SCHUSTER PAPERBACKS, 2023
2. 헨리 키신저 지음 김성훈 옮김, 헨리 키신저의 외교, 김앤김북스, 2023
3. 스티븐 M. 월트 지음 이준상 옮김, 동맹의 기원, 김앤김북스, 2024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씀 박상훈 옮김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후마니타스 / 2014
5. 굿리즈닷컴, 팔머스턴 경의 말("We have no eternal allies, and we have no perpetual enemies. Our interests are eternal and perpetual, and those interests it is our duty to follow.") - https://www.goodreads.com/author/quotes/1581470.Henry_John_Temple
6. 위키피디아, 노벨평화상 수상자 목록 - https://ko.wikipedia.org/wiki/노벨_평화상_수상자_목록
7. 브리태니커 사전(온라인)
8.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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