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정우성 혼외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대략 난감하다. 딸들과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진솔하게 말하자니 좀 진보적일 것 같고, 근엄하게 교육적으로 대답하자니 꼰대스러워질 것 같았다. 이럴 때는 질문을 되돌려 주는 방법을 쓰면 된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애는 무슨 죄야. 저 아이는 이제 자라면서 계속 혼외자라는 놀림을 받아야 할테고, 아무리 부모가 돈이 많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를 안고 있는거야. 정우성이 잘못한거지."
옆에 있던 고등학생 1번 딸도 비슷한 생각인가보다.
"아빠가 유명한 연예인인 것만 해도 관심의 대상인데, 누구나 다 아는 혼외자라면 학교 다니기가 쉽지 않을걸? 아무리 쉬쉬해도 애들은 금방 알아. 대놓고 놀리는 나쁜 애들도 있고."
일단 나의 딸들이 생각보다 생각이 단단하다는 점에서 부모로서 한번 놀랐고, 정상가족의 신화를 깨기에는 사회가 아직 만만한 곳이 아니구나라는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휘감았다.
결국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연예인 걱정, 정치인 걱정은 하는거 아니래. 그리고 사랑의 결실이든 순간의 실수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부모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하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책임을 국가나 사회가 함께 부담하겠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모델 문가비와 배우 정우성. ⓒ문가비, 정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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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혼외자 문제가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결혼과 출산을 동일시하는 전통적 관념에 묶여 있다. "얼른 결혼해서 애 낳아"라는 말은 결혼하지 않은 출산은 허용되지 않으며, 반대로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는 정상 가족의 범주에 벗어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결혼하지 않고 출산 혹은 양육하고자 하는 개인들에게 닫힌 문으로 작용하며, 저출생 문제를 악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볼 수도 있다.
배우 정우성의 혼외 출산 소식은 이 문제를 다시 사회적 논쟁거리로 제공했다. 이 사안과는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과거 방송인 허수경, 사유리의 경우에도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도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한국 사회의 많은 시선은 축하보다는 부모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쏠렸다. 이는 결혼이 출산의 필수 조건이라는 고정관념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결혼을 출산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인식도 이제 점차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주장해본다.
출산과 양육의 책임 분배 문제는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정우성 정도의 유명 연예인은 자신의 자원으로도 충분히 양육이 가능할 것이고, 그것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겠지만, 일반 서민들이나 청년들의 처지가 어디 그런가. 출산하는 순간부터 경제적·사회적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육아 노동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현실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아이를 키우는 것이 사회와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는 더 넓고 깊게 확산되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내가 무엇보다 놀란 대목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인식에도 '혼외자는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점이다. 교육은 사회적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도구인데,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출산과 양육을 결혼의 틀 안에서만 이해하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문제다. 전통적 핵가족뿐만 아니라 비혼 가족, 동거 가족, 한부모 가족, 입양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이 가족을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인간관계와 공동체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학교에 있다.
◇ 학교 교육과 미디어, 그리고 정책의 역할이 크다
혼외 출산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권동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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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대중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이끄는 데는 미디어만한 장치가 없다. 두 딸아이가 내게 예로 들었던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친구들끼리 대화하는 중에 "너는 그런 엄마도 없잖아"라는 대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형적인 한부모 가정에 대한 편견과 멸시다. 이런 내용이 버젓이 들어있는 어린이용 만화가 있다는 점이 또 한 번 충격적이다. 대중 미디어는 혼외 출산을 비롯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존중받는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과 출산의 연관성을 완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노력은 사회적 제도와 정책이다. 프랑스가 극심한 출산율 저하를 딛고 인구위기를 극복해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한 정책이 비혼 가정에 대한 지원이라는 점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서구사회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의 삶을 중시하고 국가나 사회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철학적 배경이 근본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위기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정우성 배우와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적어도 '정우성 혼외자’ 문제가 논란은 되지 않는 사회 정도는 되어야 저출산 문제 극복도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을까?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당신 딸이 혼외자를 출산해 온다면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겠는가?"
물론 부모 입장에서 선뜻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사회적 담론들과 달리 개인의 일이 될 경우 골치 아픈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들, 딸 아이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소통하는 과정에서 원치는 않았지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게 된,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축복해 줄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혼외 출산은 더 이상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출산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수용성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생명이 축복받는 사회,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사회가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다. 한국 사회는 이제 이런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칼럼니스트 동욱은 교육학과 언론학을 전공했다. 네 명의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 '사딸라'로 불리지만,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미완성 어른이다. 가족/사회 정책과 인구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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