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최근 한 여대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이유로 소요사태가 발생해 주목을 끌고 있다. 있어서는 안 될 폭력사태는 논외로 하고 남녀공학 전환이 학생회 측에 의해 논의조차 봉쇄돼야 할 이슈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대는 가부장제가 만연했던 시대,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830년대 미국에서 처음 설립됐다. 하지만 여성 권익이 신장되고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사라짐에 따라 애초 설립 목적의 근거가 희박해졌다. 이제는 주요 선진국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의 경우 2020년 기준 대학생의 58%가 여성이며, 미국 대학에서 여성의 남성 초과 현상은 이미 고착화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대학교 취학률(재적학생수/취학적령인구)은 2024년 기준 남성 73.1%, 여성 76.9%로 2015년부터 여성 우위가 지속되고 있다.
한편 학생들 사이에서 여대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 됐고, 펀딩도 갈수록 어려워져 대부분 사립대학인 여대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미국에서도 1960년대 한때 230여개나 됐던 여대는 2022년 현재 3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이미 10여개 여대가 과거 공학으로 전환한 바 있다. 특히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대학의 지속성을 고민해야 하는 형편에서 공학 전환은 생존을 위한 중요한 선택지일 수 있다. 현재 학령인구 감소와 여대에 대한 선호도 저하 등으로 볼 때 앞으로 상위 소수의 여대를 제외하고는 학생 유치조차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학 전환은 학내 구성원 간 토론과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그 논의조차 차단하는 것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기를 특징짓는 변화의 흐름이 있다. 그 변화에 적응해 자신이 한발 앞서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노키아, 코닥 등 업계 선두였던 글로벌 대기업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경쟁에서 탈락한 경우를 우리는 보았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PwC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기업이 10여년 후에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확률은 52%이다.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와 재산이 걸려 있으므로 기업은 사회의 어느 조직보다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도 절반 이상은 변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해 실패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난 지금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고, 앞으로 거센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이 변화에 적응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기업만이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다.
경제 분야보다는 속도가 더디지만 제도, 관습, 문화 등에서도 변화는 항상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현재 제사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성인 중 56%가 "앞으로 제사 지낼 계획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이 같은 변화를 도외시하고 집안에서 누군가가 전통적 제례 문화를 고집한다면 같은 세대는 모르겠지만 후세대와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통 의식도 현대 산업사회에 맞게 간소화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 의미를 구현하지 않는다면 종국에는 모두에게 외면받게 될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후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변화하지 않아도 자신 세대에는 큰 문제가 없을 수는 있지만 후세대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번 여대의 공학 전환 논란도 현재 재학생의 입장보다도 향후 입학할 후배들을 우선한다면 학생 측과 대학 간 의견의 접점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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