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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국내 47본뿐인 귀한 몸 ‘나도범의귀’, VVIP 대접하자 개체 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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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강원 태백 태백산국립공원 검룡소 부근 당단풍나무 밑동에서 자생하고 있는 멸종위기 식물 나도범의귀. 국립공원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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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5일 새벽 강원 태백의 태백산국립공원에선 검룡소 주변을 순찰하던 국립공원공단 직원이 멸종위기 식물 ‘나도범의귀’ 자생지에 접근한 탐방객 2명을 적발했다. 국내에는 태백산에만 자생하는 이 희귀식물의 개화 시기인 5월을 맞아 탐방객들이 이 식물에 해를 끼치는 일이 발생할까 특별순찰을 실시하던 중이었다. 나도범의귀는 한강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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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강원 태백 태백산국립공원 검룡소 부근에서 탐방객들이 멸종위기 식물 나도범의귀 자생지에 무단출입한 모습. 국립공원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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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방문한 태백산 검룡소의 나도범의귀 자생지는 지난 5월 탐방객의 무단출입 이후 철조망 등의 보호조치가 시행된 상태였다. 탐방색들이 탐방로에서 이 식물의 자생지로 가지 못하도록 국립공원공단 측은 바로 철조망을 설치했다. 나도범의귀에 대한 연구·조사를 위해 무인카메라도 설치했다. 희귀식물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보호 조치가 실행된 셈이다.



검룡소에서 나도범의귀가 사라지는 것은 국내에서 이 식물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2020년 국립공원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선 검룡소 내 2개 지점에서 47개체만이 발견됐다. 북한의 경우 백두산 일대에 이 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도범의귀는 ‘범의귀’와 비슷한 생김새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으로, 세계적으로는 중국, 시베리아, 북미 등 추운 지방에만 사는 식물이다. 나도범의귀는 빙하기 당시 기온이 낮았던 한반도에 살았던 식물 중 여전히 한국 내에 남아있는 잔존식물 중 하나다. 기온 상승에 취약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북방계 식물이기도 하다. 식물 이름에 포함된 ‘나도’, ‘너도’ 등은 대체로 이 접두사가 붙은 식물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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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 태백산국립공원 검룡소 부근에서 꽃을 피운 멸종위기 식물 나도범의귀. 국립공원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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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5월에 꽃이 피는 나도범의귀가 올해 만개한 것은 5월11일이고, 꽃이 모두 진 것은 27일이다. 이 시기가 바로 이 희귀식물의 개화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검룡소를 찾으려는 시기이기도 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검룡소에서 국립공원공단의 보호조치가 없다면 나도범의귀가 절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 있다.

실제 검룡소 내에선 잎의 크기가 약 2㎝ 정도로 100원 동전과 비슷한 나도범의귀가 가는 줄기와 뿌리를 당단풍나무 밑동 이끼 위에 겨우 내린 채 자생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조망이 없다면 이 식물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탐방객이 밟고 지나가는 것만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취약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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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태백 태백산국립공원 검룡소 부근에서 자생하고 있는 멸종위기 식물 나도범의귀가 뿌리를 내린 당단풍나무가 계곡물 쪽으로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다.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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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 교란 외에도 나도범의귀 군락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당단풍나무가 부러지는 일이 발생할 경우 이 식물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유전적 다양성이 없이 모두 같은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어 만약 질병 등에 걸리면 한순간에 멸종할 우려도 있다.

다행히 공단의 보호조치가 성과를 거두면서 47본이었던 개체 수가 소폭이지만 늘어나고 있다. 땅 밑에서 뿌리가 연결되어 있는 특성 때문에 정밀조사를 해봐야 정확한 개체 수를 파악할 수 있지만 올해 들어 10~20개체 정도가 늘어난 것으로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는 파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검룡소 일대의 나도범의귀 보호조치가 완벽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2016년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태백시가 검룡소를 관리할 때는 꽃이 필 무렵 몰려드는 사진동호회 회원들이 아예 통제가 안 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장에 동행한 홍문표 강릉원주대 교수는 “자생지 주변 보호조치를 강화하는 동시에 개체 수 파악을 위한 정밀 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태백산국립공원사무소는 탐방객들의 나도범의귀 서식지 접근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추가로 설치하고, 매년 꽃이 피는 기간에는 탐방객들의 출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새벽시간대에 순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연구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엄격하게 심사해 허가할 방침이다.

생물분류학 전문가인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덕유산 광릉요강꽃 군락의 사례처럼 태백산 나도범의귀 자생지 역시 강한 보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면서 “현재 나도범의귀는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려 주변 낙엽을 정리하는 등의 사소한 행동만 해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취약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 소장은 “국내에 여러 군데 자생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단 한곳 태백산에서만 자라고 있는 만큼 확실한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면 “국립공원공단이 책임을 지고 멸종위기 식물을 지켜내는 모범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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