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측 “반도체만 예외허용 안돼
근로기준법 등 통해 유연화 논의”
업계 “글로벌경쟁 격화속 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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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에서 당론으로 발의한 ‘반도체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 가운데 ‘화이트칼라 면제’(고소득 전문직 근로시간 규율 적용 제외) 조항을 삭제하기로 당내 의견을 모은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24일 통화에서 “반도체 연구개발(R&D) 근로자 등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 예외 적용을 허용하지 않되, 추후 근로기준법 등을 통해 근무 유연화를 논의하는 방향으로 당 의견을 모았다”며 “26일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화이트칼라 면제 조항 없이도 근로기준법상 선택근로제와 탄력근로제 등을 활용하면 충분히 근무 유연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제 등을 활용하면 R&D 분야는 6개월까지 주당 64시간 근무가 가능한데 굳이 예외 조항을 둘 필요가 없다”며 “한번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점차 더 많은 산업 분야에서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를 적용해 달라고 할 텐데 자칫 근로기준법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근무시간 유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체회의 전까지 설득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화이트칼라 면제 대신 근로기준법을 통해 근로시간 유연화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근로기준법 소관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노동계 출신 야당 의원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이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민주당 환노위 소속 의원은 “예외 조항의 목적이 무제한 노동 허용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는 엔비디아, TSMC 등 미국, 대만 기업과 격차가 벌어지고 중국, 일본 기업의 추격이 거센 만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수라는 입장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기술 개발, 생산 속도가 곧 경쟁력인 글로벌 반도체 경쟁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한국 반도체 산업은 한시를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라며 “인력, 기술력, 보조금 모두 경쟁국 대비 부족한 상황에서 연구개발에 쓸 시간이라도 더 확보해야 그나마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野 “반도체만 특혜 안돼” 업계 “TSMC 등 24시간 돌아가는데…”
野, ‘반도체법서 52시간 예외’ 제동
野 “예외적용, 근로기준법 무산 시도”… 업계 “기술-양산속도에 승부 갈려”
美실리콘밸리 근로시간 규제 없어… 대만, 노사합의땐 초과근무 보장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도 괜찮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24일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특별법의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고소득 전문직 근로시간 규정 적용 제외)를 삭제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방침에 대해 이같이 반발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가 반도체 연구개발(R&D)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취지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승자 독식 구조인 반도체 업계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기술개발이나 양산에 성공한 기업이 1등을 차지한다”며 “핵심 인력들이 R&D에 몰두하는 매순간이 경쟁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 야당 “반도체만 특혜 줄 수 없어”
민주당이 반도체특별법상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 조항을 삭제하기로 가닥을 잡은 건 “기존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제 등을 통해 해결해야지 반도체특별법에만 특혜를 줄 사안은 아니”라는 취지에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은 “현행 선택근로제 등을 활용하면 3개월 동안 최대 주 80시간까지도 근무가 가능한데, 예외조항을 적용하자는 것은 주 52시간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체계를 무산시키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산자위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한국 노동시간이 연간 122시간 이상 많은 상황인데 여기서 노동시간을 더 추가한다는 것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산자위 소속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은 “반도체 공정에 들이는 시간이 최소 4개월 이상 걸리는데 R&D 인력도 이와 함께 움직이며 추적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26일 예정된 산자위 전체회의에서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 산자위 전체 30석 중 17석을 차지한 민주당 주장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친노동 성향이 강한 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 논의를 이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재계에서 “반도체특별법이 아니면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며 다급해하는 이유다.
● “TSMC-엔비디아 24시간 연구 시계 돌아가는데…”
반도체 업계는 정치권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24시간 공장이 돌아가고 R&D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에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근로기준법상 ‘특별연장근로’ 제도는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 인가가 모두 필요하고, ‘탄력적 근로제’ 역시 6개월 단위로 적용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건건마다 특별 연장근로 사유에 해당한다는 자료를 만들고 고용부 장관의 재량에 기대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것”이라며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미국, 일본, 대만은 대규모 반도체 보조금뿐 아니라 R&D 인력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근로제도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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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는 화이트칼라 면제 제도를 활용한 고소득-고강도 업무 환경으로 유명하다. 주당 684달러(약 96만 원) 이상 소득의 고위관리직, 컴퓨터 관련 직종 근로자와 연 10만7432달러(약 1억5100만 원) 이상인 근로자는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주 80시간 이상 일할 지능지수(IQ)가 높은 작은 정부 혁명가를 찾는다”며 차기 행정부에 신설될 정부효율부(DOGE) ‘구인’ 게시글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한국처럼 장시간 근로가 사회적 문제인 일본도 2019년 초과근무를 법으로 제한하면서도 R&D 등에서 연 소득 1075만 엔(약 9756만 원) 이상 근로자를 규제 제외 대상으로 봤다. 대만도 노사 합의로 일정 시간의 초과근무와 수당을 법으로 보장한다. TSMC 연구개발팀은 하루 24시간 3교대를 통해 릴레이식으로 연구가 이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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