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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사설] 사도광산 약속 어긴 일본, 뒤통수 예고에도 당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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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한국 정부의 불참 속에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3일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는 대신 별도 행사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도=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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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4일 니가타현에서 반쪽 ‘사도광산 추도식’을 강행했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1,500명도 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 노역한 곳이다. 일본은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매년 추도식을 열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행사엔 한국 유족들과 양국 정부 관계자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인사를 대표로 보내며 한국 유족들이 불참, 파행이 빚어졌다. 추도사마저 강제성 표현은 없는 맹탕이었다.

일본이 강제노역으로 고통받은 한국인을 추모하는 행사에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인사를 보낸 건 유족에겐 모욕에 가깝다. 애초 한국인을 추도할 뜻이 없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선 우리 측 동의가 필요한 만큼 일단 간사한 말로 속인 뒤, 목적을 이루자 본색을 드러낸 셈이다. 일본은 광산 인근 향토박물관 전시물에서 ‘강제노역’이란 표현을 쏙 빼는 꼼수도 부렸다. 추도식에 한국 유가족을 ‘초청’하면서도 비용은 모두 한국 측이 부담하고, 행사 명칭도 누굴 추모하는지 알 수 없게 정한 것도 일본의 속내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우리 정부의 무능이다. 외교가에서는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한국이 너무 성급하게 동의를 해줄 때부터 참사는 예고됐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희생자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론 센터를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세우고 강제성도 부인해 약속을 어긴 바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외교부가 처음엔 일본 측 대표의 야스쿠니 참배 사실도 파악 못한 채 차관급으로 격이 올라갔다고 자화자찬한 건 참담할 정도다.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다.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는 윤석열 정부의 통 큰 양보와 선제적 조치로 회복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일본이 곧 물컵의 반을 채워 화답할 것이란 희망은 매번 실망과 분노로 끝나고 있다. 상대방의 선의만 믿고 막연한 기대에 의지할 게 아니라 상대방이 합의를 지킬 수밖에 없도록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강제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들을 부끄럽게 하는 외교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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